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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아이들과 함께 꾼 ‘네버랜드 드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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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호 14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 팬’(1953) 포스터(부분) ⓒ www.pixshark.com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James Matthew Barrie·1860~1937)는 『피터 팬』을 다양한 버전으로 썼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기억되는 피터 팬의 모험담은 1904년 3월 1일 대본 형태로 초고가 완성됐다. 그는 이 작품을 부활절 공연 무대에 올리고자 했다.

이상용의 작가의 탄생 <14> 제임스 매튜 배리와 『피터 팬』

배리는 당시 최고의 영국 배우 비어봄 트리에게 ‘달링’ 역할을 제안한다. 그는 대본을 읽은 후 제작자 프로먼에게 이렇게 전했다. “배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듯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죄송하지만 당신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배리는 저에게 방금 새로운 희곡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당신에게도 그걸 보여 줄 겁니다. 전 그걸 보기 전부터 각오를 단단히 했기 때문에 그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배리는 지금 분명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프로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부활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시즌의 핵심 공연으로 ‘피터 팬’을 상연하기로 결정한다. 12월 27일 공개된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둬, 이듬해인 1905년 4월까지 계속됐다. 런던을 넘어 뉴욕으로 옮겨 간 공연은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의 단골 프로그램이 됐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적은 1940년 런던 대공습 때뿐이었다. 피터가 ‘달링’ 부부 집의 큰딸 웬디와 동생 존, 마이클과 함께 떠난 ‘네버랜드’는 20세기의 상징이 됐다.

피터 팬은 당초 무대용 희곡…성탄절 대표 공연으로
소녀 웬디는 어머니에게 피터 팬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 시작한다. 어느 날 이들의 침실에 피터 팬이 찾아오는데, 그는 집에서 키우던 개 나나에게 들키는 바람에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달아나 버린다. 피터 팬은 그림자를 돌려받기 위해 요정 팅커 벨을 데리고 다시 찾아와서는 웬디와 두 동생을 유혹해 하늘을 가로질러 네버랜드라는 섬으로 데려간다.

대단히 유명한 내용이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실제 배경을 궁금해 했다. 배리는 키가 158cm 정도였고, 평소에 몽상하기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피터가 바로 제임스 본인일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피터 팬이 피터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는 다른 일화가 있다.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Finding Neverland·2004)는 ‘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피터 팬을 무대에 올리게 됐는가’를 추적한 작품이다.

1894년 7월 4일 메리 안셀과 결혼한 배리는 켄싱턴 공원 근처의 렌스터 코너에 있는 집으로 이사한다. 그는 덩치가 큰 개인 세인트버나드 포르토스를 데리고 공원을 자주 산책하곤 했는데, 이곳에서 데이비스 형제들과 만나게 된다. 세 형제의 이름은 조지, 잭, 피터. 배리는 틈이 날 때마다 이들과 어울리면서 요정, 해적, 마법의 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배리는 아이들의 어머니 실비아 루엘린 데이비스와 만난다. 그녀는 소설가 조르주 뒤 모리에의 딸이자, 배우 제럴드 뒤 모리에의 누이였다. 제럴드 뒤 모리에는 훗날 ‘피터 팬’의 ‘후크 선장’ 역할로 유명해진다.

앨런 니의 『피터 팬이었던 남자』를 각색한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이러한 사실 관계를 낭만적 차원에서 변형한 작품이다. 배리(조니 뎁)가 데이비스 형제를 처음 만난 건 보모와 함께였지만, 영화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실비아(케이트 윈슬렛)와 아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897년 겨울만 하더라도 실비아의 남편인 변호사 아서 데이비스는 배리와 만남을 가졌다. 앨런 니의 작품은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여성으로서의 실비아와 배리 사이의 관계를 강하게 묘사하기 위해 사실을 변주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암으로 ‘피터 팬’공연을 보지 못하는 실비아를 위해 실내에 무대를 꾸며 공연을 펼치는 장면이다. ‘네버랜드’로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배리는 연극 스태프와 배우들을 이끌고 온다. 그러고는 집 안의 정원을 ‘네버랜드’로 꾸민다. 배리는 감동받은 실비아를 향해 속삭인다. “네버랜드야.”

그것은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결합된 무척 아름다운 장면이다. “죽는 건 진짜 멋있는 모험이야”라는 ‘피터 팬’의 유명한 대사는 이 장면을 통해 실비아를 위로하고, 그녀의 죽음이 아이들과 작가 자신에게 공포로 다가오지 않을 거라는 점을 강조해 보여 주는 말처럼 쓰였다.

연정 품은 여인 위해 직접 만든 ‘네버랜드’
현실 속 실비아는 1910년 8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1909년 아내와 이혼한 배리는 실비아까지 죽자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그는 실비아와 자신이 결혼하기로 했었다는 상상을 겉으로 드러내는 등 불안정한 시절을 보낸다.

다행히 글쓰기는 상상을 통한 치유 과정이 됐다. 그는 그때까지 지속적으로 수정해 온 희곡 ‘피터 팬’을 각색해, 마침내 1911년 소설 『피터와 웬디』를 발표한다. 시중에 어린이 책으로 번역돼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배리는 그녀의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봤다. 그는 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장본인이었다. 1900년에는 ‘피터 팬’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이름을 지닌 넷째 마이클이 태어났고, 1903년에는 니코라는 애칭으로 불린 니콜라스가 태어났다. 그는 자주 데이비스 형제들의 집을 방문해 함께 차를 마시거나 저녁 식사를 했으며, 요정에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독자만큼 작가를 흥분시키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맏형 조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결국 1915년에 목숨을 잃었다. 피터는 1917년 프랑스로 갔다가 전쟁 중 부상을 당했다. 가장 귀여운 캐릭터로 각인된 마이클은 1921년 5월 27일 수영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

흔히 제임스 매튜 배리를 떠올릴 때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작가라고 여기기 쉽지만 부와 명성을 얻은 후의 삶은 끊임없이 어두워져 갔다. 이런 어둠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진 작품이 바로 1920년 그가 발표한 『메리 로즈』다. 국내에 아직 번역돼 있지 않은 까닭에, 배리의 이 후기 걸작을 쉽게 접할 수 없다.

그런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박진성 감독의 ‘아일랜드: 시간의 섬’은 이 작품을 각색한 영화다. 이 작품은 상처를 안고 제주도의 한 섬으로 들어간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과거의 기억과 그곳에서 만난 섬 소녀와의 사연들을 엮어 펼쳐 보인다. 원작의 무대를 바닷가로 옮기기는 했지만 이 작품은 제임스 매튜 배리에게 드리워진 삶의 그림자를 잘 보여 준다. 현실이든 환상이든 웬디가 있다면 그림자를 꿰매어 해결하면 될 일이었지만, 전성기를 넘어선 작가에게 ‘네버랜드’는 점점 더 음습하고 어두운 시간의 섬으로 변해 갔다. 그것은 꿈꾸는 자의 이면이었다. ●

이상용 영화평론가. KBS ‘즐거운 책 읽기’ 등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CGV무비꼴라쥬에서 ‘씨네샹떼’ 강의를 진행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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