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문화계 사랑방 '소양예술농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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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밤 소양강댐 안쪽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1리 소양예술농원. 이날 오후 춘천시내에서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춘천마임축제 관계자들은 표정과 몸짓으로 또 다른 무대를 만들었다.

뒷풀이를 겸한 프렌드쉽(Friendship)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네덜란드 등 외국 극단 단원을 비롯해 국내 극단 관계자, 마임축제 스텝, 통역·자원봉사자 등 모두 1백여명. 6만5천여명의 관객이 찾은 이번 마임축제를 정리한 이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앞다투어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야외무대에 섰다. 대본도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공연과 이에 화답하는 박수가 밤새 이어질 정도로 참석자 모두가 뜨거운 우정을 나눴다. 이들은 2일 오전 내년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곳을 떠났다.

#장면 2
지난달 25일 오후 소양예술농원 모짜르트네에서 단아한 모습의 명창 안숙선씨가 혼을 담아 판소리 흥부가를 열창했다. 박을 타는 톱질소리 등 소리가 깊어갈 때마다 관객들은 ‘좋다’‘얼씨구’ 등의 추임새를 넣으며 안명창과 한마음이 됐다. 이날 안명창의 공연은 소양예술농원이 소양호의 사계 가운데 ‘봄의 향기’란 이름으로 마련한 공연. 이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공연인지라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2백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안명창은 제자들과 함께 ‘춘향가’ 등의 판소리와 가야금병창을 들려줬고 관객들과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것으로 공연을 끝냈다. 공연 후 관객들과 어울려 농원 측이 준비한 시루떡과 음료를 나눈 안명창은 “예술을 사랑하는 주인의 열정과 농원의 아름다움에 반했다”며 “앞으로 이 무대에 자주 서겠다”고 약속했다.

소양강댐 선착장으로부터 직선거리로 3백여m 맞은 편 수영골에 자리잡은 소양예술농원이 자연 속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준 높은 공연 등 예술 활동의 공간으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친목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3백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무대와 모짜르트네·우륵·왕산악 등으로 이름 붙인 세미나실 겸 숙소를 갖춘 소양예술농원이 문을 연 것은 지난 1998년 4월26일. 개원 기념으로 사물놀이패 한울림, 노엘금관 5중주단, 노래마을팀이 첫 무대를 꾸몄다. 서울음악학회 회원들은 이곳에서 연수를 한 후 개원 1주년 기념 실내악 앙상블을 연주했고, 2000년에 김덕수사물놀이패 공연, 우리 소리와 재즈음악회 등이 열리는 등 지금까지 48회의 크고 작은 공연이 이어졌다.

연극인들도 찾아와 기량을 닦고 작은 무대를 꾸몄다. 이외에도 지난해 겨울에는 작가와 어린이들이 함께 하는 자연미술캠프도 마련하는 등 예술의 장르를 넓혀가고 있다.

춘천인형극제 이사장으로 소양예술농원의 각종 공연을 기획하고 있는 강준혁(56)씨는 “농원을 예술가들이 머무르면서 작품을 창작하고 발표하는 공간으로 가꾸는 과정에 있다”며 “자주 하기보다는 좋은 공연을 통해 일반 문화적인 장소와 다른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공연에 치중했던 소양예술농원은 지난 2001년 춘천인형극제 프렌드쉽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마임축제 프렌드쉽을 마련하는 등 1년에 두차례의 친교 행사를 통해 축제 참가자를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우정을 쌓는 것은 물론 축제의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춘천마임축제 집행위원장인 유진규씨는 “소양예술농원은 분위기가 섬과 같이 예술적인 곳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샘물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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