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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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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광균
JTBC 뉴스 아침&팀 기자

30년을 ‘재수 없이’ 살아왔다. 대학 입학과 취업도 비교적 술술 풀렸고, 결혼도 또래보다 빠른 나이에 성공했다. 그 다음 마주치는 게 “아기는 언제쯤?”이라는 질문이다. 결혼식으로 가벼워진 통장, 딱 둘만 살기에 적당한 신혼집을 떠올리면 대답이 쉽지 않았다. 우선 인생을 좀 즐기기로 아내와 마음을 맞췄다. 요즘은 아이 안 낳는 게 쿨해 보이는 세상이다. 옆에서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어쩔 줄 모르는 부부들을 볼 때면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육아가 궁금해지면 ‘수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 된다.

 압박도 있었다. 어머니는 내 사촌 형의 둘째 임신 소식을 자꾸만 들려줬다. 아버지는 육아의 재미를 느끼고 싶어 10년 전까지도 임신을 시도했다는, 굳이 묻지도 않은 얘기를 툭하면 꺼냈다. “돈부터 모아야 돼”라고 철벽 방어를 하면 ‘옛날에는 없는 살림에도 쑥쑥 낳아 길렀다’는 2차 공격이 돌아왔다.

 우리 부부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과, 아내가 좋아해주는 내 모습을 닮은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석 달 동안 엽산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때때로 홍삼도 들이켰다. 아내는 아기용 샌들로 거실 한쪽을 장식했다. 그러나 첫 가임 주기를 보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여다본 임신 테스트기에는 줄 하나만 선명했다. 실패였다.

 오랜 새벽 근무로 내 몸에 문제가 생겼나. 출산 시기를 맞추고 싶어한 아내의 강박 때문일까. 초조해지고 속이 타기 시작했다. 아내는 사소한 신체 변화에도 임신을 기대하는 ‘증상놀이’에 빠졌고, 나는 피곤하다며 그냥 넘어갔던 하루가 유일한 기회 아니었을까 후회를 거듭했다.

 가장 답답한 것은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에게도 ‘아기 갖기’는 선뜻 물어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임신은 점잖지 않은 주제였다. 학창시절 받았던 성교육은 임신을 ‘피해야 할 일’로 가르쳤고, 인터넷에는 임신을 두려워하는 글이 넘쳐났다. 안 되면 걱정할까봐 양가 부모님께는 시도한다는 말도 못 꺼낸 터였다. 갑자기 신혼여행 때 생긴 ‘허니문 베이비’나, 아예 결혼 전 ‘혼수’로 아기를 만들었다는 커플이 부러워졌다.

 아내와 병원을 찾았다. 문제는 간단한 곳에 있었다. “배란일을 잘못 계산했네요. 임신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야 되는 거 아시죠?” 산부인과 원장의 진단이 마치 하늘도 보지 않고 별을 따려고 애쓴 우리 부부를 놀리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우리 부부는 다시 한번 도전했다. 이번엔 ‘하늘을 본’ 효과가 있었을까? 지난 주말 아내가 내민 테스트기엔 선명한 줄 두 개가 나타났다. 내 인생의 첫 ‘재수’도 일단 성공한 셈이다. 앞으로 육아와 대학입시까지 먼 길이 남았지만, 지금 나는 기쁘다.

손광균 JTBC 뉴스 아침&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