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문신(文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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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살에 꽂는 첫 땀. 나는 이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숨을 죽이고 살갗에 첫 땀을 뜨면 순간적으로 그 틈에 피가 맺힌다. 우리는 그것을 첫 이슬이라 부른다. 첫 이슬이 맺힘과 동시에 명주실에 품고 있던 잉크가 바늘을 따라 내려온다. 붉은 잉크는 바늘 끝에 이르러 살갗에 난 작은 틈 속으로 빠르게 스며든다. …살갗에 묻은 잉크와 피를 닦아내자 문신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골리앗 거미…."

천운영의 단편소설 '바늘'에서 문신(文身)은 관능과 탐미의 코드다. 피와 땀냄새가 섞인 원초적이고 가학적인 본능이 느껴진다. 바로 문신의 속성이다. 알프스에서 발견된 5천년 주검에서도, 4천년 전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문신은 발견된다.

당시의 문신은 주술적인 의미를 지녔다. 신을 상징하는 문양을 몸에 새김으로써 영령의 힘을 얻고자 했고, 인류학적으로 문신은 종족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했다.

국가제도가 정착하면서 문신은 신분표시와 형벌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로마인이 노예에게 새긴 낙인(烙印),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조선 영조 이전 범죄자의 이마와 뺨에 먹으로 죄목을 새기는 자자(刺字)가 모두 같다.

문신의 성격이 바뀐 것은 '너희 몸에 먹물로 글자를 새기지 말라'(구약성서)는 기독교 문화나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몸과 털과 피부)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작'(孝經)이라는 유교적 가르침의 결과일 것이다.

문신이 관능과 탐미의 상징이 된 계기는 18세기 서구 제국주의다. '타투(tattoo.문신)'란 타히티어(語)를 서구에 소개한 인물은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1728~1779)선장이다.

당시 목숨을 건 대항해에 나섰던 마초맨(Macho-man) 마도로스들은 남태평양 환도에 남아 있던 고대 주술적 의미의 기하학적 문신을 모험과 용기, 그리고 남성다운 힘의 상징으로 몸에 새겨 귀환했다.

대항해 시대 이후 타투가 확산된 계기는 양차 대전이란 전쟁이다. 힘과 용기를 과장하는 마치즈모(Machismo)는 군사문화의 속성과 맥을 같이하는 까닭이다.

이제 타투는 조폭에서부터 젊은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다. 축구스타 안정환이 입대하면서 아내 사랑을 몸에 새기는가 하면, 어느 지방에선 문신을 이용한 병역기피자가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노골적인 피와 땀은 하위문화에 속한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