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카리스마로 '소녀부대' 지휘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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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걸맞지 않은 카리스마를 지닌 미국 소녀 로커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19) 이 10대의 새로운 우상으로 떠올랐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미 그의 음반 판매량이 20만장을 넘어서 화제다.

지난해 9월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는 점과 요즘 음반 시장의 가라앉은 분위기 등을 감안하면 이는 그야말로 기록이다. 때문에 요즘 가요 기획자들 사이에선 "로커로 데뷔할 만한 소녀 가수 어디 없을까? "하는 농반진반의 얘기가 종종 흘러나온다. 한동안 댄스 그룹을 만들어 내기에 분주했던 이들이 갑자기 댄스 가수 대신에 '소녀 로커'를 찾을 정도로 라빈이 몰고 온 바람은 거세다.

***전세계 1300만장 판매

지난 3년간 국내에서 2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팝 가수는 라빈을 제외하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웨스트 라이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세 명뿐이었다. 라빈은 이 목록에서 '다소 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여성성'을 최대한 강조한 관능적인 외모와 댄스로 어필했다면, 라빈은 전자기타와 소년 같은 옷차림, 꾸밈없는 매너 등 전혀 다른 개성으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한 지 두 달 만에 3백만장(트리플 플래티넘) 기록을 낸 그녀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천3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일본에서도 1백50만장 이상 팔렸다.

국내에서의 인기도 뜨겁다. 다음 사이트(www.daum.net)에만 개설된 팬카페가 1백50개. 그중 한 카페의 회원 수는 5만명을 자랑한다.

***직접 曲쓰고 연주까지

라빈의 팬 층은 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에 집중돼 있다. 스타가 또래집단으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소녀들에게 사랑받는 소녀'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1백60㎝가 안 되는 이 키 작은 소녀는 대담한 노출 대신에 전자 기타를 택했다. 또 자신이 직접 고른 탱크 톱과 헐렁한 바지, 손목 보호대와 남자 넥타이 등 약간은 거칠어 보이는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섰다.

욕이 들어간 가사는 쓰지 않으면서도, 행동과 말 등에서 드러내 보이는 '당돌함' 역시 팬들을 사로잡은 요인이다. 그녀는 음악계에 스카우트되자 과감히 학교를 떠났고,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선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속옷만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꼬집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직접 곡을 만들고 연주도 할 줄 아는 싱어 송라이터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기요인이다. 열 두 살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남자 친구 등 자기 얘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하는 '당당한 10대'의 이미지로 또래 소녀들로부터 '동질감'과 '대리만족'을 얻어낸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엄격한 의미의 록보다 팝적인 록을 지향한 것이 더 폭넓은 층을 흡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03년을 움직일 인물

브리트니 스피어스 팬들이 있다면 안티 브리트니가 있듯이 라빈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은 그룹이 있다. 특히 록 팬들은 "라빈이 하는 음악은 록이 아니다"라며 그녀를 못마땅해한다. 의상 스타일도 그리 독창적이지 않으며, 전형적인 팝 가수와의 차별성을 시도한 것 자체가 역시 고도로 계산된 '이미지 마케팅'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라빈의 인기는 당분간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뉴스위크가 선정한 '2003년을 움직일 인물' 대열에 낀 이 소녀는 한동안 전세계 '소녀부대'를 움직일 전망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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