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 심마니 김윤호, 볼링장서 첫 ‘심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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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산삼을 찾아 산을 누비며 체력을 단련한 김윤호는 데뷔 17년 만에 처음 우승했다. [사진 한국프로볼링협회]

낮에 산삼을 캐고, 밤에 볼링을 치는 선수가 있다. ‘심마니 프로볼러’ 김윤호(48·퍼펙트코리아)가 데뷔 1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김윤호는 지난 5일 안양 호계체육관 볼링장에서 끝난 2015 DV8 브런스윅컵 프로볼링대회 결승에서 지난해 대회 우승자 김영관(36·스톰)을 236-174로 꺾었다. 지난 17년 동안 국·내외 대회에서 준우승만 4차례 했던 김윤호의 첫 우승(상금 800만원)이었다. 그는 “축하 전화만 300통 정도 받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프로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해도 김윤호의 본업은 심마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몸이 안 좋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캐며 시작한 일이 10년을 훌쩍 넘겼다”고 했다. 800만원 가치를 지닌 30년근 산삼을 캔 적도 있다. 운 좋으면 한 달에 수천만원까지 번다고 한다.

 충북 충주에 사는 김윤호는 거의 매일 6시간 동안 산을 누빈다. 10년 넘게 산을 탄 그는 “산삼은 으슥한 음지에서 많이 자란다. 주변 환경이나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산삼을 찾는다. 볼러가 오일 레인 패턴(플로어의 기름칠 상태)을 잘 읽어야 하는 것처럼 심마니에게도 그런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프로볼러 겸 심마니인 김윤호가 지난달 충북 단양에서 캔 산삼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김윤호프로]

 김윤호는 심마니 일을 마친 뒤 저녁에는 충주의 한 볼링장에서 볼링 용품을 파는 일을 한다. 틈날 때마다 볼링 훈련을 한다. 그는 “프로가 되기 전까진 충북 볼링대회에 시 대표로 나간 게 전부였다. 그래도 전국대회 정상에 서는 상상을 했다. 이렇게 꿈이 이뤄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윤호는 1998년 프로볼링 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했다. 2009년 9월 삼호코리아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건 큰 충격으로 남았다. 그는 “결승에서 미국 선수에게 진 뒤 1년 동안 그 잔상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2010년엔 허리에 철심을 4개나 박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윤호는 “우승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더 산에 많이 갔다. 약초를 캐면서 호흡이 더 좋아졌고, 하체도 더 단단해졌다. 아팠던 허리도 말끔히 나았다”고 회상했다.

 김윤호는 “우승하는 꿈을 이루는 순간까지 볼링공을 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게 가장 기쁘다”며 “나이를 더 먹은 뒤에도 행복하게 볼링을 치고 싶다. 그게 나의 또 다른 꿈”이라며 웃었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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