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3동생 관직 버리고 터 잡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1498년 무오사화(연산4)-. 성종대의 석학이었던 김종직 문하의 김일손 등 신진사류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간의 대립과 반목에서 빚어진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사건. 이때 신진사류의 김일손 등 4명은 훈구파에 밀려 억울하게 숨지고 이미 죽었던 김종직은 관에서 다시 꺼내어 목을 베이는 참형을 당했다.
성종 때 대사헌을 지낸 함안 이씨 문중의 이인형은 김종직과는 사돈간이었고 이 같은 인연 때문에 그 또한 부관 참시되는 비운을 겪어야했다.
이인형이 화를 당한 후 의형·예형·지형 등 그의 동생 3형제는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다.의형은 경남 고성군 마암면 신리로, 예형은 고성군 동해면 장기리로, 지형은 함안군 산이면에 각각 뿌리내린 신리는 가장 유서 깊은 동족부락으로 그가 살았던 4백년 고옥이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그의 아들 전경제공 이류(허)는 이곳에서 무오사화의 진상을 기록, 후세에 전했다한다. 현재 이현열씨(28·시조 상의 26대손) 가 4백년 정통을 잇고 있다.
또 고성군 덕산리는 의형의 7세손 이정이 터를 잡은 곳. 60여 가구 3백여 명의 이씨가 처마를 맞대고 모였다.
신리 인근 석마리에 지붕을 드리운 위계서원은 이 지방 유림들이 인형·의형 등 4형제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학당. 이 서원 뒤편에 자리한 숭덕사에는 이들 4형제 등 함안 이씨 10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곳은 함안 이씨의 성역으로 의형의 묘소를 비롯, 역대 선조들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