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세요] ‘나쁜 영화’ 장선우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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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에 자리한 물고기 카페에서 만난 장선우 감독. 오래된 가옥을 사서 직접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 정경애(STUDIO 706)]

“오랜 방황 끝에 제주도에서 삶의 방향을 찾았다. 예전엔 떠도는 걸 좋아했는데, 이젠 앉아서 여행하는 명상이 더 행복하다.”

 장선우(63) 감독은 2005년에 제주도로 내려왔다. 몽골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준비했으나 제작이 중단돼 충무로를 떠났다. “오랫동안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허탈했다. 다 정리하고 싶었다.”

이후 장 감독은 아내와 함께 제주도로 향해, 서귀포시 작은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통장에 남은 전 재산 2000만원을 들여 오래된 집을 개조해 카페를 만들었다. 이름이 물고기 카페다. 카페 입구에는 변시지 화백(1926~2013)이 그려준 물고기 그림이 걸려있다.

 “불교의 핵심은 깨어있는 것이다. 물고기는 늘 깨어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경책(警策)의 상징이다.” 장 감독은 방황했던 고등학교 시절, 전북 변산반도에 위치한 사찰 내소사에서 2개월 동안 지내며 불교에 입문했다. 요즘 그의 하루는 명상으로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만히 앉아 명상에 잠긴다. 명상을 하면 행복의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경마장 가는 길(1991)’을 촬영 중인 장선우 감독.

 장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은 논쟁을 몰고 다녔다. 10대들의 비행을 적나라하게 담은 ‘나쁜 영화’(1997), 가학과 피학을 넘나드는 베드신으로 외설 논란을 일으킨 ‘거짓말’(1999) 등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100억원의 제작비가 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는 ‘한국영화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사는 게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맸다. 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영화로 표출했다.”

 최근 장 감독은 그가 집필한 붓다의 생애를 다룬 시나리오 전집 『따타가따』(2012, 물고기북스) 개정판을 만들고 있다. 영어판 번역 작업도 진행중이다.

그는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주석만 190개가 달린 작품이라 만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미국·프랑스·일본 등 애니메이션 명장들이 모여 글로벌 프로젝트로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요즘 한창 집을 짓고 있다. 성산 일출봉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다. “카페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조용히 명상할 곳을 찾다 집을 짓게 됐다. 불교 용어로 ‘안거(安倨)’라고 보면 된다.(웃음)”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은 키싱 피쉬(Kissing Fish)다. 뽀뽀하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7월에서 8월 사이 문을 열 계획이다.

제주=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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