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N세대 감성 못 따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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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인 프로그램의 원조는 '배달의 기수'다. 젊은 군인들이 연병장에서 씩씩하게 훈련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식을 군에 보낸 어머니들을 안심시키는 게 기획의도였다. 극장에 가면 의무적으로 봐야 했던 '대한늬우스'와는 사촌쯤 되는 프로였다.

1988년 봄에 시작한 '우정의 무대'는 처음으로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생방 훈련의 산물이거나 뜨거운 애국심에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단지 어머니가 그리워서 흘리는 인간적인 눈물이었다. 처음엔 탈영을 부추기는 프로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그 눈물을 통해 군인들의 사기 진작은 물론 '군대의 안녕'을 홍보할 수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8년 간 지속되면서 수없이 많은 꼭지가 바뀌어도 "엄마가 보고플 땐 엄마 사진 꺼내놓고"로 시작하는 '그리운 어머니'의 주제곡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90년대 말에 생긴 'TV내무반 신고합니다'는 재향군인회 성격이 짙었다. 제대한 군인들이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가 현역 후배들과 병영체험을 하며 과거를 돌아본다. 활기는 부족한 대신 온기가 있어 그나마 훈훈했다.

KBS가 지난달 19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에 방송하는 '청춘 신고합니다'는 앞에 말한 세 프로를 종합한 '신상품'이다. 일종의 장기자랑인 '최고의 병사를 찾아라'와 다섯 쌍의 남녀가 퀴즈와 인터뷰, 몸싸움 등을 통해 휴가 갈 병사를 가려내는 '청춘프로젝트 고무신 대작전', 병영 진실게임인 '진짜 이등병을 찾아라', 그리고 '어머니 전상서' 등 4개의 꼭지로 구성됐다.

그러나 프로그램 구색 맞추기에는 성공했으나 시청자 구미 맞추기엔 못 미쳤다. 무엇보다 n세대 병사들의 욕구를 잘 읽어내지 못했다. 휴가증을 미끼로 '고무신대작전'을 펼치는 건 여전히 '아날로그적' 발상의 산물이다.

그들이 바라는 건 똑같이 자유(휴가)겠지만 그 자유를 쟁취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순박하다. 마지막 꼭지인 '어머니 전상서'에서는 어머니가 군용지프를 타고 나타난다.

'그리운 어머니'에서는 어머니를 무대 뒤에 숨겨두고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를 외친 선의의 거짓말이 오히려 뭉클했는데 그런 재미와 감동을 애초에 차단한 셈이다. 제작진의 '자존심'을 살린 대가치고는 결과물이 빈약하다. 현역이나 예비역보다 차라리 예비병사나 신병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건 어떨까도 싶다.

이 프로 역시 병사들의 '확실합니다'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 말처럼 '확실하게' 무언가 차별적 재미를 찾아내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군대라는 특수성과 청춘이라는 보편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병사들을 과감하게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시켜라.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걸 보여주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라. 부활은 없다. 진화가 있을 뿐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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