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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뽑힌 당수는 5년간 못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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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5월 총선에 참패한 영국 노동당에선 당권 경쟁이 한창입니다. 더 노동당다워야 한다는 후보도, 상대적으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후보도 있습니다. 노선 투쟁입니다. 낯익은 풍경이지요.

 그러다 이게 뭐지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차기 주자로 꼽히는 유력 정치인이 “5년 임기 중 3년을 채운 당수에 대해 재신임 여부를 물을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자”고 제안한 겁니다. 후보 중 한 명이 동조했습니다. 제대로 못하면 도중에 갈자는 얘기였습니다. 의당 그래 온 게 아니냐고요? 아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시 당수인 해리엇 하먼은 한마디로 거부했습니다. “1인1표제인 룰에 따라 선출된 지도자는 (다음 총선 때까지인) 5년간 책임지고 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새 당수가 5년 후 총선을 치르는 겁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한때 에드 밀리밴드 당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개인 지지율에선 줄곧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밀렸기 때문입니다. 노동당의 약점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의 의도대로 총선을 치렀습니다.

 영국 정치 지도자들의 수명은 깁니다. 노동당이 본격적으로 집권한 1945년 이후 당수 재임 기간은 최소 3~4년이고 수십 년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원내각제는 불안정하다는 통념과 다르지요. 총선에서 져도 살아남곤 했습니다. 마거릿 대처 총리의 집권기는 노동당엔 닐 키녹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채 2년이 안 되는 당수가 있긴 한데(존 스미스) 그건 그가 심장마비로 급사했기 때문입니다.

 당수들이 잘해서냐고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때 경륜은 우리네를 능가합니다. 형인 데이비드를 제치고 39세에 당수가 된 에드 밀리밴드는 어릴 때부터 정치 훈련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좌파 사상가인 아버지와 노동당원인 어머니를 만나러 노동당 지도자들이 집에 무시로 드나들었고 밀리밴드 형제는 어릴 적부터 이들과 토론했으니까요. 옥스퍼드대 시절에도 노동당 활동을 했고 정부에서도 일했습니다.

 이들에게 일정한 시간도 주는 겁니다. 최소 한 번의 총선을 치를 수 있게 말입니다. 선택이 옳았는지 글렀는지 결과가 말해줄 뿐입니다. 그때까지는 지도자도, 그 지도자를 뽑은 사람도 자신들의 선택을 고수하는 겁니다. 양쪽 모두 그에 따른 책임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아무리 탁월한 지도자라도 적응기 또는 훈련기가 필요한 법이죠.

 우린 가능성을 보고 뽑곤 첫날부터 잘하길 바랍니다. 못하면 갈아치웁니다. 소비해 버립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렇습니다. 이력에 ‘대표’라고 새긴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정작 지도자급 인물은 그에 반비례해 희귀해져 가는 현상입니다. 새정치연합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재 풀이 영국 노동당보다 풍부하다고 과신하는 걸까요?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