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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캔디 재미있어” “엄마, 뽀로로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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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심 곳곳이 만화 세상이다. 만화로 옷을 차려입은 지하철, 만화로 가득 찬 도서관과 박물관, 만화 작가와 만날 수 있는 전시와 축제, 가족 사랑방이 된 만화방 등. 만화가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남녀노소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옛날 종이책으로 만났던 만화 주인공들은 오늘날 인터넷 세상에서 뛰어다닌다. 아빠는 로봇태권V와 은하철도999를, 엄마는 캔디와 하니를 그리워하며 아이들에게 만화영화 얘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뽀로로’와 ‘폴리’를 만나고 싶다며 부모의 손을 잡아 이끈다. 만화가 세대를 연결해 주는 끈이 되고 있다. 강풀 만화거리, 명동 재미로를 찾으면 만화를 보며 옛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다양한 기획전시·교육 프로그램 진행

많은 사람이 이 골목을 경사가 가파르고 특색 없이 후미진 명동의 뒷골목쯤으로 기억한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는 명동과 남산을 연결하는 길목 중 하나지만 최근에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리를 형형색색 물들인 만화를 보기 위해서다. 이 골목은 시민 공모를 통해 2013년 말 ‘재미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골목길은 서울 중구 남산동2가(퇴계로20길)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3번 출구 앞 상상공원에서 시작해 퍼시픽호텔 앞 만화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공영주차장을 지나 남산커피집까지 약 450m에 이르는 길이다. 이 골목을 벗어나면 길 건너편에 로봇 태권V 조형물이 서 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눈앞에 보인다. 골목이 경사져 있으므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먼저 본 뒤 재미로를 보면 내리막길을 따라 걸을 수 있어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이 길을 걸으면 옛 종이만화부터 오늘날 인터넷 웹툰까지 다양한 만화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큰 인기를 끈 만화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하니와 경쟁자 나애리가 달리기 경주를 벌이는 조형물은 인기 포토존이다. 남산 공영주차장 벽화도 볼거리다. 작가와 작가 간 대결 구도의 대형 만화다. 시기별로 작가와 작품을 바꾸는데 요즘엔 양영순 작가와 이충호 작가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다.

점포별 특징에 맞춰 그린 만화도 상점에 개성을 더한다. 미용실 유리문엔 ‘안녕, 자두야!’ 만화에 나오는 천방지축 소녀의 삐삐머리 모습이, 불고기 음식점 벽면엔 ‘용하다 용해, 무대리!’ 만화의 직장인 캐릭터들이, 문구점 유리문엔 만화 ‘검정 고무신’의 코흘리개 꼬마들이 그려져 있다. 각 점포에선 일부 공간을 활용해 자체 만화 기획전시를 열기도 한다.

명랑골목도 잊지 말고 꼭 들러 보자. 남산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걷는 뒷골목이다. 옛 추억의 만화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골목이다. 만화는 ‘심술통’ ‘철인 캉타우’ ‘요철발명왕’ ‘맹꽁이서당’ ‘로봇 찌빠’ ‘도깨비 감투’ ‘고인돌’ ‘별똥탐험대’의 장면들이다. 60~80년대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원로 명랑만화 작가 이정문·윤승운·신문수·박수동의 작품들이다.

명랑골목이 끝나는 곳엔 ‘과거 여행길’이라는 골목이 이어진다. 만화방·사진관·다방 등 70~80년대 풍경을 그린 만화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뛰노는 놀이터 그림은 진한 향수를 선사한다.

다목적 문화공간인 ‘재미랑’은 재미로의 백미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인기다. 이곳에선 만화작품 기획전시, 만화 캐릭터 상품 등을 판매한다. 특히 4층 만화다락방에선 다양한 만화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어 호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꼽힌다.

재미로 건너편 서울애니메이션센터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도 만화와 관련된 각종 기획전시와 교육강좌가 열린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애니메이션 전용 극장인 서울애니시네마, 만화 콘텐트 기획전이 열리는 테마전시실, 다양한 도서·영상 정보실, 만화 캐릭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캐릭터 체험전시실, 영상·녹음 편집실, 캐릭터 제작실 등의 시설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선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그림 그리기, 이야기 창작하기에서부터 3D 제작에 이르기까지 만화와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을 쉽게 배울 수 있다. 현직 만화가·감독·작가와 마케팅 전문가들이 교육해 생생한 실무를 익힐 수 있다.

마음의 상처 어루만져줘

서울 지하철 5호선 강동역 4번 출구를 나오면 100여m 앞 왼쪽 골목에 일명 ‘강풀 만화거리’로 불리는 마을이 나온다. 바로 서울 강동구 성내2동에 위치한 성안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안에 자리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동네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독거노인이 많고 몇 안 남은 젊은이들마저 떠나면서 경기 불황까지 겹쳐 동네 상권도 가라앉았다. 그래서 강동구가 2013년에 이런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따뜻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만화거리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강풀 만화거리는 강동구에 거주하며 강동구 곳곳을 작품 배경으로 활용한 강풀 작가의 인터넷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거리 조성의 발단이 됐다. 천호대로 168가길 주변 골목길을 강풀의 순정만화 그림을 활용해 공공미술로 재구성한 거리다.

강동구, 미술작가모임인 핑퐁아트, 선사고교 미술부 학생들이 힘을 모아 2013년부터 2년여에 걸쳐 벽화를 완성했다. 강풀 작품 특유의 웃음과 색깔이 오밀조밀 골목길을 알록달록 꾸몄다.

벽화는 강풀의 원작 ‘그대를 사랑합니다’ ‘바보’ ‘당신의 모든 순간’ ‘순정만화’ 중에서 성안마을 정서에 맞는 그림들을 골라 건물·벽·골목 형태에 맞춰 각색한 그림들이다. 내용은 믿음·우정·사랑·가족·이웃 등을 주제로 담아 만화거리를 돌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폐품을 재활용해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은 아날로그 감성까지 더해져 감동을 선사한다. 예를 들면 수레 바퀴로 만든 글씨, 폐타이어로 만든 도넛, 컴퓨터 키보드로 만든 동네 꼬마들의 노는 모습 등이다.

‘어서 와’ ‘반가워’ ‘아니 여기 웬일이래요’ ‘열심히 살게 해줘서 고마워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고 가요’ ‘그래 잘했다 잘했어’ ‘피곤하지? 들어가서 쉬자’ 등 벽화 속 등장인물들이 행인을 보며 건네는 말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골목 상점들과 어우러진 만화도 눈길을 끈다. ‘추억이 흐르는 이발소’라고 쓰인 이발소 유리문엔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김만석 할아버지가 ‘20대 청춘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 웃음짓게 한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영오(68)씨는 “조용하던 동네에 만화 벽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그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선사하고 싶어 옛 레코드판·영화포스터 등과 바리캉(수동식 머리깎이 기계) 등으로 가게를 꾸몄다”면서 서영춘과 백금녀의 만담을 담은 레코드판을 틀어 보였다.

‘시간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벽엔 글씨가 담긴 나무 팻말로 가득하다. 여기엔 ‘실수를 많이 하면 고쳐 나가면 된다’ ‘잘 놀아야 잘 산다’ 등 성안마을 어른들이 청년에게 전하는 글귀가 담겨 있다.

벽화는 ‘어서 와 강풀만화거리’에서부터 ‘사랑은 사람을 춤추게 한다’까지 52개 그림으로 이뤄져 있다. 그림을 해설해 주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신청(강동구 도시디자인과·02-3425-6133)하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글=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사진=서보형 객원기자, 캐릭터=픽토스튜디오(pictostudio.ne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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