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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스카프에 가우초 양치기 패션도 수준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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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26면

2~5 멕시코 여성의 전통의상. 블라우스 형태의 위필이 대표적이다. 흰색 드레스는 꽃무늬를 많이 사용하는 오하카 지역에서 생산됐다. 6~8 왼쪽부터 파라과이ㆍ코스타리카ㆍ볼리비아ㆍ칠레ㆍ아르헨티나 전통 의상. 농부나 목동 등 지역적 특성이 의복에도 반영됐다. 지금은 주로 축제 의상으로 많이 사용된다.
1 중남미문화원 전경.

한쪽 어깨에 길게 늘어뜨린 가우초(Gaucho). 단정하게 매듭을 맨 스카프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바지 차림이다. 너른 평원을 떠돌며 가축을 치던 목동의 이름에서 따온 아르헨티나 전통 의상이다. 반면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의 전통 의상은 품이 넉넉하고 소매 대신 어깨를 덮는 넓은 주름을 활용한 원피스 스타일. 커피 재배 등 농삿일에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장식을 최소화한 농부의 옷매무새에서 발전했다.

중남미문화원 ‘중남미 15개국 전통의상 및 직물전’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중남미 15개국 전통의상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경기도 고양시 중남미문화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중남미 전통의상 및 직물전’(4월 18일~6월 17일)이다. 1974년부터 93년까지 코스타리카·도미니카 공화국·아르헨티나·멕시코 대사를 역임한 이복형(83)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미 순방에 맞춰 소장품을 정리하고 주한 대사관들의 도움을 얻어 특별전을 기획했다”며 “20년간 궤짝에 보관해오던 의상들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홍갑표(81) 이사장은 “남편이 대사 일로 바쁠 때 벼룩시장을 다니며 보물 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사모은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 부부가 살림집 및 초대 작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미술관 지하 공간을 이번에 전시실로 재단장하면서 관람 시설이 한층 넓어졌다. 덕분에 대사관 측에서 대여해온 작품을 제외한 소장품은 상설 전시할 수 있게 됐다.

9 이복형 원장과 홍갑표 이사장 부부.

이 원장이 대사 시절 부임국을 옮겨 다닐 때마다 섭렵한 마야ㆍ아즈텍ㆍ잉카 유물을 지역별로 골라보는 재미가 특히 쏠쏠하다. 200여 점의 전시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위필(Huipil). 멕시코ㆍ과테말라 등에서 마야 여인들이 즐겨입던 옷이다. 직사각형 원단을 반으로 접어 목에 구멍을 내면 폰초(Poncho), 옆트임을 꿰매면 위필이 된다. 홍 이사장은 “허리띠 격인 파하스(Fajas)의 문양을 보면 어느 지역에서 누가 만들어졌는지 정보가 담겨 있어 당시 생활상과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중에서도 오하카 지역이 유독 꽃무늬가 많다면 과테말라에서는 기하학적 무늬를 선호하는 식이다.

전통 공예로 넘어가면 지역색은 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제 1전시실부터 벽면 가득 만나볼 수 있는 위촐(Huichol)은 멕시코 중서부의 나야릿ㆍ할리스코ㆍ두랑코 지역에 거주하는 아즈텍계 위촐 부족의 털실 공예를 통칭한다. 얼핏 보면 수를 놓은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돌돌 꼰 털실을 붙여서 만들었다. 태양의 탄생과 사멸 주기를 따라 세상이 재창조된다고 믿는 아즈텍의 작품답게 해와 달이 공존하는 가운데 여러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이 담겨 벽화 같은 느낌을 준다.

파나마의 몰라(Mola)는 선을 단순화해 추상미를 높였다. 산 블라스 군도에 거주하는 쿠나 인디오 작품으로 붉거나 검은 천 위에 다른 천을 여러 겹 덧대 꿰맨 퀼트 방식이다. 홍 이사장은 “여자들은 보통 7살 때부터 자수를 배워 결혼할 무렵이 되면 숙련된 작가로 성장한다”며 인디오 민속 예술 중에서도 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려주었다. 잉카 문화권인 남미는 모직물을 활용한 타피스(Tapiz)가 유명하다. 알파카 털 등 사용 재료도 다르고 모노톤으로 작품 색채도 완연하게 대비된다.

1994년 문을 연 중남미문화원은 올해로 21돌을 맞았지만 여전히 진화 중이다. 박물관을 시작으로 미술관ㆍ조각공원ㆍ종교전시관을 차례로 신축하며 한국 속 작은 중남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 같은 공로로 (사)한국박물관협회(회장 김쾌정)로부터 ‘2015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원로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지난 18일 이 상을 받았다. 그는 “대통령 훈장도 많이 받았지만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은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더욱 값어치가 있다”며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살림집까지 줄여온 보람이 있다”고 했다. ‘문화는 소유가 아닌 나눔’이라는 이들 부부의 입버릇이 과언은 아닌 듯 하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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