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때 큰 조직지도부 김정은에겐 아킬레스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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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당·군 간부들에게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와는 다르게 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말은 “아버지 때 사람들은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이 구축한 조직지도부와의 필연적인 대립구도가 만들어졌다.

 조직지도부는 김정일과 함께 만든 선군정치가 편했다. 이유는 선군정치로 고려시대 문벌 귀족처럼 권력을 세습하고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지도부의 핵심 인물들은 군대 내 상장(한국군의 중장) 이상 고위직을 겸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경옥 제1부부장은 대장이며,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제1부부장 시절에 차수를 겸했다. 조직지도부는 1946년에 만들어졌지만 김일성 시대보다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면서 권력의 중심에 들어섰다. 김일성 시대에는 조직지도부장이 서열 9위 정도였지만 김정일이 73년에 조직지도부장이 되면서 서열 4위까지 올랐다. 이때부터 조직지도부가 다른 전문부서의 사업까지 간접적으로 통제·감독하게 됐다.

 조직지도부의 권한은 인사권의 장악에 있다. 김일성 시대의 인사는 당 간부들의 소관이었다. 하지만 김정일 시대는 조직지도부에 간부과를 신설하면서 모든 당 간부와 국가 및 정부기관의 국장급 이상 간부들의 인사를 맡게 했다. 심지어 조직지도부 간부과는 군부 고위 간부를 선발·검토하면서 군대도 장악하고 있다.

 김정일도 자신이 키웠지만 이렇게 막강해진 조직지도부를 견제하려고 했다. 김정일은 2007년 12월 조직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내부 권력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조직지도부 행정 부문을 행정부로 독립시켰다. 조직지도부는 본부당·군사·전당·행정·서기실 등 5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 가운데 본부당 부문이 가장 막강하다. 중앙당 내 모든 조직을 관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일은 당 행정부를 통해 조직지도부를 견제하려고 했다. 당 내부적으로 행정부가 조직지도부 본부당 부문보다 더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정부는 뇌물을 가장 많이 받은 조직이 돼 버렸고 실제로 그 권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지게 됐다.

김정은 경험 부족 노출한 ‘장성택 숙청’
하지만 행정부는 권력을 장악하면서 부패해져 조직지도부에 공격의 빌미를 주게 됐다. 이런 것들이 김정은에게도 눈엣가시로 비쳐졌다. ‘김정은 시대’가 아니라 ‘장성택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조직지도부와 손잡고 장성택을 제거했다. 이에 따라 행정부도 와해돼 조직지도부가 다시 옛날의 영광을 회복하게 됐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김정은에게 더 비대해진 조직지도부를 견제할 세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나마 장성택을 통해 조직지도부를 견제했지만 더 이상 어렵게 됐다. 장성택도 김정은에게 ‘위협 요소’가 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제거가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던 것이다. 젊고 경험이 부족하고 조급한 김정은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비록 최용해· 김양건· 김기남· 박도춘 등이 있긴 하지만 이들에겐 세력이 없어 조직지도부를 상대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최용해 손대지말라” 김정은 말 안 통해
조직지도부는 장성택 제거 이후 다음으로 최용해 당 비서를 끌어내려고 했다. 김정은은 최 비서가 가족과 같은 사람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조직지도부에 경고했지만 줄기찬 요구에 결국 군 총정치국장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래서 김정은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으니 간부들을 24시간 대기시키고 실적으로 엄격히 따지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김정은과 조직지도부의 갈등은 대외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조직지도부는 동북아시아에 60~70년대식 진영논리를 다시 만들어 중·러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로 북한의 생존을 모색하려고 한다. 반면 김정은은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조직지도부는 김정은의 대일 접근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그래서 북·일 스톡홀름 합의가 1년이 경과됐지만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반면 김정은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하지만 조직지도부는 요지부동이다.

 내부에서 이런 권력다툼이 있으니 지난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전승절 기념 행사에 김정은은 참석할 수 없었다. 자리를 비웠을 경우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56년에 소련과 동구권을 그해 6월부터 7월까지 방문하고 있을 때 그를 몰아내려는 반역 모의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5월 중순 평양을 방문한 재미동포 한모씨는 “김 제1위원장이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방러 포기의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 싱크탱크 신안보센터 밴 잭슨 연구원도 “김 위원장이 현재 내부를 장악하는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국내 문제가 안전하다고 느끼면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출국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정은이 완전한 권력을 쥐려면 조직지도부를 장악해야 한다. 대북 소식통은 “그 시그널은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북한 권력은 계속 요동칠 것”이라고 말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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