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매일 10문제씩 지현이의 ‘티끌 모아 태산’ 공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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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신여고 3학년 황지현양

황지현양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그 자리에서 100% 이해하고 넘어가기 위해 집중한다.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 수업을 듣는 게 비결이다.

국어·과학은 초교 때부터 날마다 꾸준히
한번에 많이 공부하기보다 완벽히 이해
수업시간 필기 대신 집중해 듣고 밑줄만

티끌 모아 태산. 정신여고 3학년 전교 1등 황지현양이 좋은 성적을 받는 비결이다. 황양은 초등학교 때 주말을 제외하곤 하루도 빠짐없이 주요 과목별로 문제집을 풀었다. 그런데 많은 양을 푼 게 아니라 ‘티끌’만큼 적은 양을 풀었다. 수학은 서너 장 이상 풀 때도 있었지만, 국어·사회·과학 같은 과목은 딱 한 장씩만 풀었다. 엄마 김수진(50·서울 잠실7동)씨가 “매일 공부하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공부 양으로는 한 장밖에 안되지만 한 달이면 20장, 3개월이면 한 권을 다 풀어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공부 습관과 지식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 전교 1등으로 이어졌다.

수업 내용은 수업시간에 소화

수업 내용에 집중하느라 교과서에 필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18일 오후 정신여고 3학년 12반 교실. 생물 교사의 말을 받아 적느라 분주한 학생들 사이로 황지현양이 눈에 띈다. 바른 자세로 앉아 교사의 말에 집중하고 있지만, 주변 학생들과 다르게 필기를 하지 않는다. 모범생 중에는 펜을 번갈아 가며 오색 빛으로 찬란하게 필기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데, 황양은 조금 다르다. 교사가 중요하다고 하는 내용에 밑줄 치는 게 전부다. 수업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도 예전에는 다른 학생 못지않게 열심히 필기했다. 생명과학 시간에 ‘분류’에 대해 배울 때는 교사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교과서 빈 공간에 받아 적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이 끝난 후 복습하려고 책을 들여다보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났다. 난생처음 보는 내용처럼 낯설었다. 수업시간에 필기하느라 급급해 결국 머릿속에 남는 건 전혀 없었던 거다. 그때부터 수업 듣는 방식을 바꿨다. 필기에 집착하는 대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그때그때 최대한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 교사 말만 듣는 건 아니다. 예전에 배웠던 내용과 연관 지어 전체적인 맥락을 잡는다. 황양은 “수업시간에 아무 상관없이 서로 동떨어진 내용을 배우는 게 아니지 않냐”며 “단순하게 ‘A는 B다’라는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걸 넘어 A와 B가 나오게 된 배경과 원리를 파악해야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생명과학에서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폴리펩티드 사슬이 각각 다른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1유전자-1폴리펩티드설’에 대해 배웠다면, 이 가설이 나오게 된 ‘1유전자-1효소설’과 ‘1유전자-1단백질설’까지 한꺼번에 떠올려 보는 식이다.

이외에도 신경 쓰는 게 또 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최대한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거다. 이는 집중력을 높이고 졸음을 쫓는 방법이기도 하다. 얼굴을 턱으로 괴고 앉거나 엎드려 수업을 들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금방 눈꺼풀이 무거워진단다. 주요 과목은 물론 성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과목 수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학생이 꿀잠을 청하는 종교 시간에도 황양은 혼자 정자세로 앉아 수업을 듣는다. 황양은 “한 번 자세가 흐트러지면 주요 과목 수업을 들을 때도 ‘한 번쯤은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며 “사교육을 아무리 열심히 받아도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고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양이 틈틈이 찾는 학교 자율학습실 책상. 타이머를 이용해 자신의 문제 풀이 속도를 꼼꼼히 확인한다.

사실 수업 열심히 듣는 것 외에는 특별한 공부법도 거의 없다. 입체적으로 글을 읽고, 타이머를 이용해 자신의 문제 풀이 속도를 체크하는 것 정도다. 입체적 글 읽기는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예측하면서 글을 읽는 방식이다. 예컨대 국어 지문에 ‘나는 학교에 간다’는 문장이 있으면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내용이 나오겠네’라고 예상하면서 읽는 거다. 황양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으면 내용 이해가 쉽고, 핵심 주제도 빠르게 찾을 수 있다”며 “예전에는 국어 과목 문제를 풀 때 항상 시간이 부족했는데 입체적 독서를 시작한 후에는 문제 푸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시험 기간에 계획 세울 때 사용하는 플래너.

타이머를 이용해 시간을 재는 것도 시간 분배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50분 이내에 30문제 풀기’ 같은 한 가지 목표를 이루는 데 타이머를 사용하는 대부분 학생과 달리 황양은 자신의 문제 풀이 시간을 체크하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국어 10문제, 화학 10문제 푸는데 각각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고, 이를 고려해 계획을 세운다. 지난해 11월에 본 모의고사 국어 과목에서 시간 분배를 잘못해서 80점대가 나온 후로 국어 과목은 지문별로 풀이 시간을 꼼꼼히 체크한다.

내신 시험 기간에는 플래너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험 기간 3주 전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그날 공부할 계획을 세우는데, ‘국어 공부’ ‘수학문제 풀기’처럼 과목뿐 아니라 문제 수까지 구체적으로 적는다. ‘2015 6월 모의고사 지문 1개’ ‘화학Ⅰ 기출 10문제’ ‘독서 지문 3개’와 같은 식이다. 계획 옆에는 해당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걸릴 예상시간을 적어놓고, 실제 걸린 시간도 함께 표시해 놓는다. 황양은 “한 문제를 푸는데 대략 몇 분이 걸리는지 파악할 수 있어 좋다”며 “예상 시간보다 많이 걸리면 개념 이해가 부족하거나 원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증거가 돼 복습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 키워준 엄마

그는 벼락치기를 하거나 욕심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공부하지 않는다. 국어·화학 과목은 매일 10문제씩 푸는 식으로 매일 조금씩 꾸준히 공부한다. 초등학교 때 익힌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다. 김씨는 황양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과목별로 문제집을 풀게 했는데, 수학은 초급·중급·고급 3권을 풀게 했지만, 국어·사회·과학 등은 한 학기에 딱 한 권, 하루에 딱 한 장만 풀게 했다. 한 번 공부할 때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황양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운 것도 초등학교 때다. 김씨는 딱 두 가지만 했다. 문제집에 풀어야 할 날짜 적는 것과 채점이다. 아이가 문제집 한 장을 다 풀면 김씨는 채점을 한 후, 틀린 문제가 있으면 다시 풀어보게 했다. 처음부터 답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혼자 고민하고, 탐색해볼 수 있게 도왔다. 김씨는 “두 아이가 모두 모범생으로 반듯하게 자란 데는 ‘하루 문제집 한 장 풀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며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매일 꾸준히 시킨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좋은 성적을 받는 비결은 또 있다. 공부 외에 합창단원·학급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거다. 공부를 안 하고 다른 활동하는 게 전교 1등 비결이라니, 쉽게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황양은 “논문 작성하는 방법이나 전학 가는 친구 송별회를 준비하는 게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주제를 정하고, 조사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르고, 자료를 모아서 결론을 도출하는 게 비슷하다는 의미다. 황양은 “중학교 때부터 오케스트라 단원, 구기대회 선수, 합창단원 등을 하면서 인내와 끈기를 배웠고 이는 결국 엉덩이 힘을 기르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책상 위 교재
ㆍ국어: EBS수능특강(EBS)
ㆍ수학: 블랙라벨(진학사), EBS수능특강(EBS), EBS포스(EBS)
ㆍ영어: EBS수능특강(EBS)
ㆍ과학: 완자 화학, 생물(비상교육), EBS탐스런 화학, 생물(EBS), EBS수능특강 생물(EBS)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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