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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온 배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신기술 발달로 작고한 연기자를 작품에 등장시키는 경우 늘고 있지만 관객의 정서적 반응도 고려해야

폴 워커가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촬영 중에 사망하자 제작진은 삭제됐던 화면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완성했다.

2013년 11월 30일 배우 폴 워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촬영 중이었다. 사고가 나자 제작진은 워커가 나오는 장면을 마무리하기 위해 임시방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편집으로 삭제됐던 화면을 이용하는 한편 폴과 체격이 비슷한 동생 코디와 칼렙의 모션을 캡처해 그 위에 폴의 ‘디지털 마스크’를 투사하는 방식이 이용됐다.

고인이 된 배우를 영화에 출연시키고 영화 제작에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더 보편화될 경우 배우와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이다.

고인이 된 배우를 영화에 출연시키는 데 이용되는 기술에는 3가지가 있다. 가장 단순한 기술이 예전 화면과 새로운 화면을 나란히 놓는 방식이다. TV 드라마 ‘댈러스’(1978~1991, 2010~2014)의 제작진은 JR 유잉으로 출연했던 배우 래리 해그먼이 사망하자 이전에 삭제됐던 화면을 이용해 그 후에 촬영된 에피소드에 그를 출연시켰다. HBO 드라마 ‘소프라노스’(1999~2007)에서도 리비아 소프라노로 출연했던 낸시 마천드가 2000년 사망하자 같은 방식이 이용됐다. 하지만 이 장면이 어색하고 실감이 안 난다는 평을 듣자 HBO는 결국 드라마 속에서 그 캐릭터가 사망하는 걸로 처리했다.

최근 조니 워커 위스키는 오래 전 고인이 된 이소룡을 광고에 출연시켜 화제를 모았다. TV 드라마 ‘댈러스’에서 J R 유잉으로 출연했던 래리 해그먼 역시 편집과 신기술을 이용해 사후 촬영된 장면에 등장했다.

두 번째 기술은 로토스코핑(rotoscoping)으로 각기 다른 시점에 촬영된 화면을 몽타주해 한 장면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함께 등장시키는 기법이다. 이소룡을 등장시킨 최근의 조니 워커 위스키 광고나 199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나탈리 콜이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냇킹 콜과 듀엣을 부른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1992년 제작된 코카콜라 광고는 엘튼 존이 이미 고인이 된 험프리 보가트와 제임스 캐그니, 루이 암스트롱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담아 화제를 모았다.

가장 복잡한 세 번째 기술은 누군가와 닮은 이미지(얼굴 표정, 피부 상태, 헤어 스타일 등)를 컴퓨터로 재창조해 인조 배우를 만들어낸다. 이 기법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반지의 제왕’(2001~2003)의 골룸이다. 배우 앤디 서키스가 모션 캡처 보디 수트를 입고 연기하는 캐릭터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살을 붙였다.

배우 올리버 리드는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 촬영을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이 그의 이미지를 되살려냈다. 올해 개봉하는 영화 ‘헝거 게임: 모킹제이 2부’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한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에서 첨단 재건술로 폴 워커의 모습을 되살려낸 장면들은 매우 놀랍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의 눈부신 발전을 생각할 때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1960년대에 초기 라인 그래픽이 선보였고 1970~80년대에는 2D 표면에 단순한 조명 효과를 이용해 3D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기술이 나왔다. 1982년 영화 ‘트론’은 컴퓨터로 장편영화 제작을 시도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1977~1983)의 우주선에 이용된 와이어프레임(wireframe) 기법과 ‘토이 스토리’(1995) 이후 픽사의 성공에 박차를 가한 입자 렌더링(particle rendering) 기법도 컴퓨터 그래픽 발전의 중요한 단계로 꼽힌다. 컴퓨터 게임이 창출한 그래픽의 엄청난 수요는 칩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혁명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이다.

지난 20년 동안 컴퓨터 그래픽과 영화, TV의 상호교류가 매우 활발했다. 영화 ‘주라기 공원’(1994)의 공룡과 비디오 게임 ‘둠’(1994)부터 ‘월-E’(2008) 같은 영화와 비디오 게임 ‘매스 이펙트 3’(2012)까지. 간단히 말해 컴퓨터 게임의 수요 급증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특수효과 영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 옛것과 새것의 경쟁이 그 영화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최신 무인 공습기 프레데터 드론과 1960년대의 고출력 자동차, 전지적 능력을 지닌 최신 감시 칩과 도시 물정에 밝은 사람 등. 이 영화는 폴 워커를 기리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관객이 영화배우들을 보면서 떠올리는 질문 또한 옛날과 지금은 천양지차라는 점에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금 저 캐릭터는 누구의 몸에 누구의 얼굴을 갖다 붙인 걸까? 이 이미지와 연기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톰 크루즈는 ‘오블리비언’(2013)에서 모션 캡처 수트를 입고 연기했다. 하지만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된 후 크루즈는 자신이 연기하는 동안 기록된 모든 자료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다. 크루즈의 의도가 장차 그 자료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방지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크루즈 정도 위치에 이른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런 결정에서 그렇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문제는 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느냐다. 폴 워커를 재창조한 사람들은 그 배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나 첨단기술의 제약을 어느 정도나 받았을까? 다른 영화 제작자들도 작고한 배우를 출연시킬까? 만약 그렇다면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망한 배우를 디지털로 재창조할 때 기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허용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 범위는 궁극적으로 그 배우의 연기에 대한 관객의 기억에 의해 정의되고 제한돼야 마땅하다.

[필자 피터 크랩은 캘리포니아대학(어바인) 영화·미디어학 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글=피터 크랩 뉴스위크 기자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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