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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파수의 시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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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체코의 노시인「야로슬라프·세이페르트」에게 84년도 노벨문학상이 돌아갔다.
강국도 아니고 대국도 아닌 체코슬로바키아에 첫번째 노벨문학상이 돌아간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수상자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도 아니고 체코와 중부유럽에나 알려진 인물이란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그가「반체제」시인이란 점은 더욱 중요하다.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아카데미는『참신한 감수성과 풍부한 창의성으로 가득찬 시를 통해 불굴의 인간정신과 다양한 가능성의 이미지를 전달한 공로』를 찬양했다.
그의 시는 체코민족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정과 휴머니즘을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정복되지 않는 영혼』을 노래한다는 그는 명확하고 단순하며 기교가 없는 글로 곧장 인간정신의 정수에 육박한다.
때때로 어둡고 우울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목소리의 시다.
19세때 그가 최초로 내놓은 시집은『눈물의 도시』.
약소민족의 우수가 짙게 깔려 있지만 결코 비관에 늘 젖어만 있지 않았던 것이 더 값진것 같다.
28세때(1929년)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온뒤 그가 공산당을 탈당하고 반체제입장을 취하게된 사상의 편력도 그의 시를 성숙시킨 요인이 됐다.
나치 점령하에 조국을 위한 항전에 참가해서『돌다리』같은 뜨거운 애국시도 썼다.
68년 소련군의 체코 침공때는 체코작가동맹위원장으로 앞장서 소련군을 규탄했고, 77년 반체제 지식인들이 서명한「77헌장」의 첫번째 서명자가 된것도 그의 인간을 설명한다.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주장할줄 아는 사람의 굳센 정신이 유난히 돋보인다.
그를 체코의 국수인 리파(Lipa)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비바람 천둥속에도 꿋꿋하고 웅장하게 버티고 서서 그늘을 드리워주는 그런 사람이란 평이다. 그는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철한 의식을 가지고 싸웠다.
그의 시『프라하를 위한 소네트15』에는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진실이 있다.
『프라하, 포도주향기같은 너/폐허 속에쓰러져/실향의 운명에 몸부림치며/대지가 피로 얼룩져도/오, 그 향기 잃지않으리…비록 모두가 너를 배반해도/내 어찌 너를 배반하랴/나 여기서 죽은 형제와 기다리노라/이른 봄부터 겨울이 끝날 때까지/조국의 새벽이 올때까지 문옆에서 조용히….』
아름다운 정신에 영광이 돌아간것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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