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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은 문화풍토의 산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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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모두 돌을들고 표절자를 치라하면 상당수가 돌을 다시 놓을 것이지만 또 상당수가 자신은 돌을 맞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근 표면화된 일련의 표절사건을 놓고 문화계가 이래선 안되겠다며 자성의 움직임을 보일 때 어느 학자가 들려준 고언이다. 좀 과장해 표현한다면 저. 편저. 편. 역의 구별이 모호한 상황, 크게 보아 「베껴먹기」 냄새를 풀풀 풍기는 문화풍토를 차제에 말끔히 세척해보나는 결단같은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여기서 학자들이 표절현상을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단지 어쩌다 표면화된 특정한 표절만에 얽매어 벌여놓는 얘기가 아니며, 점차 치열해가는 일각의 창작과 연구열에까지 춘물을 끼얹자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분야별. 전공별로 표절풍토의 차가 큰 사실도 간과할 수 없지만 도대체 어디까지가 표절이냐 하는 문제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최근 몇건의 「사건화된 표절」이 우연이 아닌 풍토의 산물이란 인식을 짙게 깔고 있다.
가끔 드러나는 일이지만 토씨까지 온통 베껴대는 「전재식 표절」의 상황은 돌을 맞아도 통증을 못느끼는 상황이다. 물론 이것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아무 래도 표절의 주류는 「재구성」기법이라는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내용을 다시 짜고 문제를 바꾸는 행위다. 어느 한분야에서 외국의 저서를 토대로 「조금씩 달리해 전체적으로 같은」여러 권의 저서들이 나왔을 때 저자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모든 상대방을 가해자로 느끼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K대 김모교수는 말한다.
물론 『이것은 내것이다.』하고 떳떳이 주장하는 사태 또한 벌어지진 않는다.
이렇듯 주름지고 찌든 상태, 잠재된 죄의식의 토양에서 생기찬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까.
논자들은 모든게 「양심」에 맡길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이시대의 양심을 규정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 간과할 수 없다는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많은 학자들은 그 하나로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권위주의를들고 있다. 책 한두권쯤 내야 권위가 서고 따라서 체면도 빛난다는 것이다.
1년에 짤막한 논문 한두편 내고도 동료로부터 인정받고 그에 대한 보상 또한 제대로 따르며, 「저서」는 대석학이 하는 일로 돼있는 외국풍토에 비해 「저서」의 비중이 막중한 우리 사회에서 논문 몇편으론 권위가 서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책(교과서)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압박감으로부터 발전하기도 한다. 비록 내용은 대동소이하더라도 내제자와 내제자의 제자들이 남이 쓴 책이 아닌 내책을 갖고 가르치고 배우도록 책을 써야 하는 것이다. 학록과 인맥이 끈끈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이 틈바구니에 책팔려는 상업주의까지 끼어들어 불을 지르기 일쑤다.
또 하나는 비판부재현상. Y대 오모교수는 『토론을 삶의 무기로 삼아야 할 사람들이 침묵과 순종, 냉소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전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따지려 들지 않는다.
사실 비민주적 불평등속에서 건강한 토론이란 기대할 수 없다. 일방적 순응이나 아첨, 아니면 격렬한 저항만을 낳을 뿐이다. 지식인들은 이런 비민주적 불의 싸움에 끼어들어 몸 상하고 이름 버리려 하지 않는다. 섣불리 본색을 드러내 어느 변에도 끼고 싶지 않도는 기회주의적. 방관적 생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오늘날 우리 문화의 암적 요소의 하나인 표절현상을 진단하면서 그것이 다름아닌 이 사회의 비민주적 장치들과 긴밀히 연결돼있음을 확인, 각 분야에서 함께 벌여야 할「민주화」작업의 긴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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