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사장님보다 동네 이장이 행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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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자신이 직접 지은 살림집 앞에서 농림부 장관상장을 들고 있는 차광주 이장. 최준호 기자

두메산골 마을의 이장님이 농림부가 주최한 농업정책 관련 소논문 응모대회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차지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기막리 이장인 차광주(47)씨가 그 주인공. 사기막리는 전 주민이 2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첩첩산중의 마을로,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다.

차씨는 농림부가 주최한 '2005 우리농업 희망 찾기 정책 공모'에서 '농촌으로 돌아가게 하는 정책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이란 A4용지 13쪽짜리 소논문을 냈다. 이 소논문은 181명이 낸 응모작들을 제쳤고, 지난달 29일대상(상금 500만원)을 수상했다.

7년여간 농촌에서 직접 생활하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문에서 그는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농촌은 이제 '거대한 양로원'과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 귀농인 상담원제 도입 ▶유휴 농지의 귀농 실습지 활용 ▶농촌 빈집 활용 ▶다랑이논 직불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현실감 있는 대안들을 여럿 제시했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차씨는 서울에서 어린이 도서 전문 '보리출판사'를 운영할 때만 해도 '잘나가는 사장님'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1997년 말 전국을 강타한 IMF 경제 위기로 출판사를 후배에게 넘겨줘야 했다.

이후 전국귀농운동본부가 개설한 귀농학교를 수료한 그는 98년 11월 아내(45)와 딸(고1)을 서울에 남겨둔 채 어머니(75세)와 함께 지금의 거주지로 찾아들었다.

차씨는 "동화작가인 권정생 선생의 좋은 글들을 읽으며 언젠가는 시골에 정착하겠다고 먹었던 마음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정착하자마자 그는 생업 터전으로 사들인 1000여 평의 밭 한 쪽에 20평 규모의 단층집을 지었다. 서투른 솜씨였지만 손수 흙벽돌을 찍어 만든 집이라 애착이 더 간다고 한다.

콩과 감자 등을 꾸준히 재배해 온 그는 집에서 개 한 마리와 닭 15마리도 기른다. 흙이 덕지덕지 묻은 2.5t짜리 트럭이 자가용이자 '밥줄'이라는 그는 친환경 농법에 관심이 많아 청천면에서 '유기농법 전문가'로 통한다.

차씨는 4년 전부터 마을 이장을 맡아 왔다. 성실한 활동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은 데다 50여 명의 주민 중 나이가 가장 어리기 때문에 '떠밀리다시피' 맡은 이장직이 '장기 집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이장을 맡은 직후 사재 500만원을 털어 마을회관 옆에 '귀농자의 집'을 신축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조기 정착을 위해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현재 이 집에서는 40대 초반의 후배 귀농자 2명이 생활하고 있고, 내년에는 30대 한 명이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상금 대부분은 귀농자 지원비로 쓸 계획"이라는 차씨는 최근 마을 주민 4명과 함께 '사기막골 뚝심이들'이란 작목반을 결성했다. 비닐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감자를 생산할 꿈에 부풀어 있다.

장병성(56) 청천면장은 "차 이장이 열심히 활동한 덕택에 주민들의 애향심이 강해지고 귀농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자랑했다.

괴산=최준호 기자

*** 바로잡습니다

1월 9일자 17면 '출판사 사장보다 동네 이장이 행복해요' 제목의 기사에서 차광주 이장이 '외환 위기로 출판사 문을 닫아야 했다'고 한 부분을 '귀농하기 위해 보리출판사 사장직을 그만뒀다'로 바로잡습니다. 당초 인터뷰 과정에서 차씨는 기자에게 "위환 위기 때 출판사를 처분했다"고 말해 기자는 차씨가 출판사 문을 닫고 귀농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뒤 출판사 측에서 "차씨가 그만둔 뒤 새 사장이 선임돼 현재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서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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