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물자 「특상품 보내기」안간힘-빈약한 북한 경제에 깊은 주름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은 이번 수재물자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 가운데 최고 품질을 보낸 게 분명하다. 이 물자들이 수재민들에게 배급되면 품질에 관심이 집중되리란 판단에서 최상 품질의 물자를 생산, 수집하느라 북한에서는 일대소동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는 식량절대량이 부족해 생산된 쌀을 중공 등에 수출하고 그 대신 다량의 옥수수· 콩 등을 중공·태국 등에서 수입해 일반주민들은 주식을 쌀3·옥수수7의 비율로 먹고있다. 일반주민들에게 배급되는 쌀은 도정이 덜된 현미위주의 조악한 것이고 백미는 해외에 수출하거나 당 간부 등 특수층·군관급 이상의 군인·외국인용으로 쓰이는 정도다.
남한에 보낸 수재물자는 이런 특수용 비축분 중 북한전역에서 수집한 것으로 일부는 재 도정까지 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수재물자로 보낸 5만석의 쌀은 일반 북한주민들은 먹어 보지도 못하는 최고급의 양질미인 셈이다.
현재 북한 내에선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해 배급량의 10%를 「절약미」란 이름으로 공제 당하는 어려운 사정인데 이번 수재물자관계로 추수 후에도 절약미 공제가 계속되지 않겠느냐 하는 걱정이 주민들간에 번지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시멘트도 북한산은 강도가 떨어지는 저급품. 그래서 중요건축 공사용으로 수입하는 외국산 시멘트를 북한산 시멘트에 섞어 질을 높였다는 것이다.
천(직물)도 당 간부 등 특수층용으로 생산했던 비교적 무늬가 있는 포플린과 며칠 새 생산공장을 총동원해 만든 다양한 무늬의 그들로는 「최고급」천을 보내왔다.
실제 북한에는 천이 부족해 김정일은 『잠 잘 때 내의나 잠옷을 안 입는게 건강에 좋다』 는 교시까지 했다고 한다.
혼수용 이불 감을 구하기가 힘들어 지방의 주민들은 그래도 물자사정이 좀 나은 평양시민에게 부탁을 해서 간신히 마련할 정도로 사정이 어렵다. 특히 내의·팬츠 등이 귀해 김일성·김정일이 자기 생일 때 주민들에게 생색을 내며 주는 선물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미 우리가 수재물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이후 북한 안에는 천과 시멘트 배급이 일체 중지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5분의1밖에 안 되는 경제규모에 자급 적인 체제 아래서 이렇게 비교적 제한된 기간에 최상품을 생산·수집하고 남한으로 수송하느라 북한은 경제운용에 상당한 주름살이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단시일 내에 긴급 수송을 하게됨에 따라 화차수송이 올 스톱되는 등 전반적 수송체계에 혼란이 야기됐다는 게 외국 상사들의 이야기다.
13척에 이르는 대형 화물선을 동원함에 따라 이미 선적출항을 했던 배까지 불러들여 실려있던 물자를 하역하고 다시 시멘트를 선적하느라 대형선박 수송이 장시간 마비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규모가 작은 북한의 수출이 물량이나 수송 면에서 더욱 타격을 받게됐다.
또 수재물자 생산·수송·보관을 위해 정권유지 기관까지 총 동원했고 중앙에서는 총리 강성산이 총지휘를 하고 지방에는 장관급들이 파견되는 총동원태세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수재물자 제공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북한의 대내외 경제활동에 차질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매체를 동원해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며 질병에 시달리는 남조선 수재민을 위해 뜨거운 동포애를 발휘하자』는 등의 선전을 연일 계속하고 있다.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는 물자수송용 트럭을 집결시켜 거창한 발대식까지 하는 등 주민 위무용 대내 선전에 특히 열을 올리는 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