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양념 값 수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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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물량이 모자라 값이 뛰고 있는 고추·마늘·양파 등 양념작물 2만1천t을 긴급 수입키로 결정했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은 이들 양념류의 작황이 나빴고 수해까지 겹쳐 물량이 크게 모자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가격 안정에는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특히 양념류의 수요가 가장 많은 김장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가격안정뿐 아니라 물량의 확보자체도 문제가 되어온 사정을 고려할 때 긴급수입을 결정하게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우기 올해의 경우는 작황부진에 겹쳐 늦여름의 대형수재를 겪음으로써 수급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고조되어 있음에 비추어 수입의 결정이 이 같은 소비자들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의미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수급부조를 노린 중간상인들의 매점매석이 일찍부터 성행되었던 점과 이들의 가격·물량조작이 본격적인 김장철에는 더욱 가열될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여러 사정들을 고려할 때 이번 김장철의 양념파동은 쉽게 예견된다.
이 경우 대도시 소비층들이 과연 양념파동을 무리 없이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현재 모자라는 양념 물량은 고추의 경우 2만5천t, 마늘은 2t이 각각 수요에 비해 모자라고, 양파의 경우는 11만t이나 모자란다는 것이 농수산부의 집계다. 이 통계에 따르면 부족물량은 모두 15만t을 넘고 있는데 이번의 수입 결정량은 2만1천t이다.
따라서 이번의 수입결정은 엄밀히 말할 때 수급조절용 이라기보다 가격안정을 목적으로 한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정부의 수입결정발표가 소비자들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불러일으키고 매점매석한 중간상인이나 유통과정에서 잠재돼있는 물량의 출하를 늘릴 수만 있다면 시장수급이 어느 정도나마 개선될 수 있고 폭등세의 양념 가격도 기세가 꺾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대응책들이 설사 주효한다 해도 양념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더 기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고추·마늘·양파 등의 작물은 원래 국내생산 증가와 자급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의 해마다 우리는 양념파동을 겪어왔고 또 그때마다 수입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농정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자급 가능한 기초적인 농산물조차·수급을 맞추지 못하고 연례적인 파동과 수입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농정부재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농산물 생산은 안정적인 가격지지와 수급안정에 의해 시장전망이 안정돼야만 비로소 생산안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그 동안의 여러 차례에 걸친 파동에서 익히 체험한 바다. 조금만 모자라거나 값이 올라도 수입을 터 생산의욕을 떨어뜨리는 농정을 토대로 장기적·안정적 생산기반을 마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산물의 생산·유통·저장·출하와 관련된 제반기구와 조직을 강화하여 수입 없이도 파동을 막을 수 있는 농정의 전환이 긴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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