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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발' 배정 거부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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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교육부는 이런 집단행동에 당황하는 표정이다. 교육부는 사립학교의 신입생 배정 거부 주장을 엄포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교육부는 5일 밤 김영식 차관을 제주도로 급히 보내 심야 대책회의를 여는 한편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키로 했다.

◆ "제주부터 시작하는 것"=제주도교육청은 4일 신입생 배정 결과를 8개 인문계 고교에 e-메일로 통보하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신입생 명부와 입학전형원서 서류를 찾아가라"고 연락했다. 보통 같으면 각 학교는 이런 서류를 받은 다음 신입생 예비소집, 등록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5일 서울에서 온 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김하주 회장 등이 제주 지역 5개 사립고 이사장.교장과 모여 긴급회의를 연 뒤 수령 거부로 사립학교의 행동 지침이 정해졌다. 김 회장은 회의 뒤 "법인협의회의 배정 거부 결의를 재확인했다"며 "배정이 가장 빠른 제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신입생 예비소집은 9일이고 신입생들은 20일까지 등록해야 한다.

비슷한 시간 서울에선 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서울지회 소속 이사장과 교장 등 200여 명이 모여 "신입생 배정을 거부한다. 정부의 어떤 압력과 조치가 있더라도 뜻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한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했다. 헌법소원-법률 불복종 운동-신입생 배정거부-학교 폐쇄 등의 수순을 그대로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서울의 고교 배정일은 다음달 11일이다.

◆ 교육부 맞대응=교육부는 이날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배정 거부▶등록 거부▶수업 거부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했다. 김 차관은 "제주의 경우 예비소집(9일 오전 11시)을 거부할 경우 명백한 배정 거부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점까지 차관이 사립학교와 접촉해 배정 거부를 철회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배정 거부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일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2일엔 전북(고교), 13일엔 강원(중학교), 20일엔 충북(중.고교) 등에서 신입생 배정이 발표된다.

사립학교가 신입생 예비소집을 거부할 경우 일단 시정 명령을 하고 그래도 응하지 않을 경우 학교 이사장에 대한 고발조치, 이사진의 이사 승인 취소, 임시 이사 파견, 학교장 해임.교체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또 사립학교법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범정부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사학법인의 위헌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교육부.국무총리실.법제처.법무부 등의 국장급 공무원과 변호인단 등 모두 11명으로 하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교육부는 '당근'도 마련했다. '건전 사학'에 대한 자율성 보장과 행.재정 지원을 위한 '사립학교지원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키로 한 것이다.

◆ 향후 전망=사학법인 측과 교육당국 사이에 접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6일 사학법 시행령개정위원회 2차 회의를 열고 종교사학의 경우 건학이념 구현에 지장이 없도록 시행령에 정할 사항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종교계의 반발부터 달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주교 및 개신교, 사학단체들은 여전히 불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주 지역 고교 신입생 예비소집일인 9일이 이번 사학법 파동의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립고교들이 예비소집을 거부할 경우 사학법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관련, 이들 학교는 6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제주 지역 사립 D고 교사는 "재단이 학생들의 예비소집까지 거부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학재단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거센 비난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고정애.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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