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한국에 기술이전 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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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출범 이후 의욕적으로 내세운 '동북아 R&D 허브'구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관련 부처는 앞다퉈 외국 기업의 연구기관 유치 실적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인 곳이 많다. 본지는 최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209개 외국 기업 연구소(외국인 투자지분 50% 이상)를 대상으로 조사해 과학기술부에 보고한 실태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이들 연구소의 85%가 국내에 기술을 이전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곳 중 3곳이 특허 등 지적재산권을 한 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들 기업은 동북아 연구개발 거점으로 일본(44%)과 중국(40%)을 꼽았다. 한국을 꼽은 기업은 5%에 불과했다. STEPI 측은 "해외 유수 기업의 연구소를 국내에 유치해 첨단 기술을 들여오고 고급 연구인력에 일자리를 주려는 당초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최근 작성한 '중국의 부상'제목의 이슈리포트에서도 확인된다. KISDI는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 다국적 기업들이 새로 개설할 R&D센터의 최적지로 중국.미국.인도가 1~3위에 꼽혔다고 밝혔다.

중국.인도가 세계의 생산기지뿐 아니라 첨단 다국적기업들의 R&D기지로 떠오를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대만.싱가포르에도 뒤지는 13위에 머물렀다.

임준 KISDI 책임연구원은 "중국이 기술집약산업에서 첨단기술을 확보하면 한국이 가장 타격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던 R&D센터가 떠나는 사례도 나온다.

변재일(열린우리당) 의원은 "과학기술부 자료를 받아 검토한 결과 지난해 국내의 외국계 연구기관 42개가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책을 분명하고도 일관되게 펴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국무총리가 R&D센터 유치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정작 일선 정부 부처나 지자체에선 지역 균형 발전.외국 기업 지원 등의 정책을 놓고 이견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성태 경기도 투자진흥관은 "외국 기업이 R&D센터를 설치하면 초기 투자금의 일부를 정부가 돌려주는 제도가 있지만 경기도 내 외국 기업 중 이 혜택을 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비싼 땅값, 임대료와 인건비, 언어 소통의 불편 등도 걸림돌이다. 한 외국 기업 관계자는 "최근 외국 기업 사장단 모임에선 '한국 R&D센터가 투자한 만큼 성과를 못내 규모를 줄인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최근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과기부.정통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국가 IT경쟁력 10대 과제로 외국 기업 연구소 유치 촉진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혁주.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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