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욕" 버리고 단합할 때 | 태풍에 휘말린 프로복싱계 살길은… | 전문가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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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로복싱 가짜 도전자 사건이 프러모터 전호영씨의 구속에 이어 한국권투위원회(KBC)에 대한 전면 수수로 확대되면서 국내 프로복싱계는 전례 없는 시련을 맞고 있다. 이번 비리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 당국의 방침이고 보면 이 회오리는 간단히 끝날 것 겉지 않다.
프로복싱은 어떻게 이 난국을 수습할 것인가, 프로복싱을 살릴 대책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김영기><복싱 평론가>>
이번 사건은 부패된 집행부와 악덕 프로모터의 합작품이다. 도전자가 가짜라는 것을 사전에 몰랐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ABC집행부는 자리를 지키고 연장하기 위해 프로모터를 등에 업었고 프러모터는 돈벌이 수단으로 양 회장을 밀어왔다.
집행부는 권투계의 비리와 타락에 대해 KBC 대의원의 비판과 불신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전씨의 도움으로 무마시켜 왔고 그 댓가로 부정도 눈 감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전씨는 링에서 떠날 것을 선언했지만 KBC집행부도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총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빨리 수습 대책위를 구성, 활로를 찾아야 한다. 복싱계에 이렇다 할 리더가 없는 것은 안타깝다.
차제에 권투인들도 각성해야 한다. 각자 자기 할 일에만 충실하고 권력의 흐름에 편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지만 권투계로서는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드디어 터진 셈이기 때문이다. 치유가 더 빨리 될 것으로 믿는다.

<김유창><원로 권투인>>
도전자가 의심스럽다 해서 타이틀매치 2∼3일 전에 대전을 연기시키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대전권을 경기가 벌어지는 지방의 프러모터에게 넘겼고 TV방영 스케줄도 잡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준비와 확인을 완벽하게 끝낸 후 대전을 성사시켜야 한다.
설령 KBC나 전호연씨가 사전에 몰랐다 하더라도 충분히 확인치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책임은 며키 어렵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책임은 KBC와 프러모터측에 있다. KBC는 순수하게 프로복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스포츠단체에서는 봉사 정신이 앞서야 한다.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어지면 공정한 일을 할 수가 없다.
현 시점에서는 무엇보다 권투인들의 양심에 따라 비리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새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시급하다.
내 나이 올해 71세, 하루빨리 권투계가 정상 가동, 권투인들이 기를 펴고 지내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다.

<강석운><강포프러모션 대표>>
한마디로 부끄러운 일이다. 같은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이번 가짜 선수 소동에 책임을 통감한다.
솔직이 말해 현재의 프로복싱계는 숱한 비리의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업계가 자생 능력이 없었다는 데 기인한다.
선수·매니저·트레이너 등 어느 누구도 자립정신이 없는 마당에서 도무지 「깨끗한」 권투계 풍토를 기대한다는 건 사실 무리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선수뿐 아니라 이를 관리·감독하는 권투위원회(KBC) 마저도 미처 손을 대지 못했고 끝내는 이들에 붙어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던 게 그간의 사정이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대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복싱계가 협조적인 분위기 아래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다. 선수·매니저는 맡은 바 소임대로, 그리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KBC는 공정하고 엄격하게 일을 처리, 제 기능을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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