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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60~70년대 은막 스타 고은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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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79년 개관한 서울극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에서 고은아 대표를 만났다. [사진 여다연(STUDIO706)·중앙포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1960~70년대 은막의 스타이자, 79년 인기의 정점에서 스크린을 떠나 팬들을 아쉽게 했던 배우 고은아(69). 그는 관객의 눈 앞에선 사라졌지만, 합동영화㈜서울극장 대표로 계속해서 영화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의 서울극장 역사 전시실에서 만난 고 대표는 고희를 앞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왕년의 우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배우일 때는 제 노력보다 더 많은 대가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어요. 인기라는 게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잖아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보통 사람은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추억거리를 갖게 된 것 같아요. 모든 게 우연처럼 시작됐지만, 제가 배우가 되고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인생의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73년 촬영한 배우 고은아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 여다연(STUDIO706)·중앙포토]

 고 대표는 홍익대 미대에 다니다 우연히 영화 ‘난의 비가’(1965)에 캐스팅되어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대표작 ‘갯마을’(1965)을 비롯해 단아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여러 문예영화에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70년대엔 TV 드라마 간판 스타로 활약했으나 79년 기독교 방송의 진행자로 나서면서 연기를 중단했다. 그는 “TBC 전속 배우였는데, 갑자기 연기를 그만두니까 친한 PD들이 계속 연락을 해왔다”며 “한 가지 일에 올인 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그때는 기독교 방송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89년에 ‘제2공화국’(MBC)에 출연한 것을 제외하고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 있는 그는 “시장이 완전히 달라졌고, 예전 감각도 잊었다. 세월이 흘러가는 쪽을 쳐다보고 가야하지 않겠나”라며 다시 연기를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고 대표는 극장 경영과 나눔·봉사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 대표는 영화 제작·배급자로서 한국 영화계를 호령했던 고(故) 곽정환(1930~2013) 서울극장 회장과 결혼하면서 극장 경영에 자연스럽게 입문했다. 97년부터 서울극장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2년 전 곽 회장이 별세한 후 최종결정권자로서 극장을 책임지고 있다.

  최근 서울극장은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서울아트시네마(지난달 오픈)와 독립영화상영관인 인디스페이스 입주를 결정하고, 각종 기획전을 개최하는 등 다양성 영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고 대표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공세로 토종 극장의 입지가 좁아져 어려운 점이 많았다. 다양한 영화 속에서 서로 소통하다 보면 윈윈 하는 길이 열릴 거라고 본다. 관객도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의 영화를 접할 수 있다. 예술과 문화 그리고 사업성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재단법인 행복한 나눔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국내 저소득층 가정과 전세계 재난 지역을 지원하고 있다.

 “제게 나눔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저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잘 교육 받고, 영화 배우라는 아름다운 추억 거리도 있잖아요. 제 노력보다 덤으로 주어진 게 많아요. 그 빚진 마음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작더라도 힘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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