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불순한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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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한적십자사가 북적의 물자제공을 수락했을 때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그것이 북한에 의해 정치선전 목적에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우리의 우려는 평양당국에 의해 즉각 현실로 나타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북한적십자회의 손성필 위원장은 방송을 통해 한적의 접수수락을 환영한다고 해놓고는 물자를 우리 수재민에게 직접 전달할 테니『협력해달라』는 투의 말을 했다.
그 같은 태도는 적십자정신과도 관계없고 인도주의나 민족애와도 무관한 것이다.
북한이 언급한대로 수재를 당해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 수재민을 돕기 위한 인도주의, 동포애 적 조치라면 다른 이유로 시간을 끌지 말고 빨리 물건을 보내서 수재민이나 수재현장에 도착토록 하는 것 외에는 딴 궁리를 할 필요가 없다.
국제 간의, 또는 공공기관간의 물자 전달은 그것을 상대방 국가 또는 기관에 전달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그 다음부터는 당해 국가, 당해 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내심을 짐작컨대 물건을 보낼 생각이 전혀 없이 허풍 제의를 내놓고 이를 퍼뜨려 정치선 부에만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듯한 인상이다.
다음은 우리가 지적한대로 우리국민 반일분의 살과 우리 한 업체 3일분 생산량의 시멘트를 가지고 우리 땅에 들어와 직접 전달한다고 우리내정에 간섭하고 국민과 정부를 이간시키려는 공작 차원의 조치라는 인상이 아닌가 하는 의식이 간다.
당초부터 우리는 북한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현재 북한의 경제력으로는 그 정도의 물자 염출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물자가 준비됐다해도 그것을 수해복구나 이재민 구호에 유효하게 쓸 수 있도록 조속히 실어올 수송력도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혹시 북한은 과거 남북이 서로물자 제공을 제의하고 거부하는 관례에 따라 이번에도 우리가 거부할 것으로 지레 예상하고 그런 제의를 한 것이 아닐까.
이제 문제는 간단하고 명백하다. 보내겠다고 대 내외에 공개적으로 약속한 양의 물자를 빨리 보내야한다.
북적의 제의가 진실로 동포애 적이고 인도주의적이라면 달리 무슨 조건을 달아서 시간을 끌려고 하는가.
혹시 이행할 능력이 없는 말을 꺼내놓고 파악할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듭 경고하거니와 북한은 이것을 기화로 우리내정에 관여하거나 우리국민을 이간시키는 상투적인 수법엔 이제 식상해 있다.
지금은 이번 적십자단체간의 물자교류가 남북이 평화관계를 수립하여 물적·인적교류를 달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함께 노력할 때다.
북한의 순수한 인도주의와 민족정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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