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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흥모(성균관대 교수)|김창순씨(북한 연구소 이사장)"우리국민의 자신감 나타낸 것"|한적의「불적제의 수락」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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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북적 제의에 대한 한적의 수락은 남북관계에서 본다면 7·4공동 성명이래 가장 충격적입니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빅뉴스인게 틀림없습니다. 이번 한적의 조치는 크게 환영 할만한 것으로 봅니다.
양=우리의 성숙된 주체성의 표현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번 북한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계기로 단절된 남북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면 그보다도 더 다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재민을 돕는다는 것은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떠나 순수한 의미에서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물품을 보내는데 조건이 있을 수 없죠. 받는 측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김=물론입니다. 북한에서 보내는 쌀이 공산당이 생산한 것도, 김일성이 생산한 것도 아닙니다. 이북에 사는 우리동포가 생산한 쌀이고 옷감이지요. 같은 동포로서 그것을 안 받을 이유도 없고 하등의 갈등도 느낄 필요가 없지요. 민족공동체의 재건이라는 문제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안고있는 대 과제입니다.
양=과거에도 북한에서 이와 비슷한 제의가 있었습니다만 그때마다 그들은「힘의 과시」로 이를 선전에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무산되고 만적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입장은 남북관계에 있어서「힘의 과시」나 정복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갖는「힘의 철학」은 무모하고 불합리한, 그리고 비현실적인 요소를 후퇴시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북쪽의 이번 제의도 물론 어떤 생각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협소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 이번 기회에 북한이 대내노선을 조금이라도 전환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데요.
김=맞습니다. 비록 북쪽은 공산정권이고 남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같은 민족입니다. 민족이 둘일 수는 없지요. 수재민에게 순수한 동족의 입장에서 물품을 보낸다면 우리도 순수한 민족적 양심과 양식으로 접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북의 제의를 접수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와 함께 앞으로 남북한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공산정권이기 때문에 이면에는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국민들도 다 알고 있지요.
양=공산권 전반에 걸친 문제지만 북쪽은 이제 그들의 체제유지를 위해 공산주의만으로는 어렵다는 내부의 갈등을 안고 있는 것 아닙니까. 북한의 가장 친근한 동맹국인 중공만 하더라도 과거와는 달리 괄목할만한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7, 8월에 북쪽의 고급간부가 중공을 방문했을 때 중공의 새 지도노선을 지지하겠다고 말했지만 중공노선을 따르는데도 내부의 사상적 갈등과 체제모순이 있는 것이죠. 이번 기회에 남쪽의 수재민을 돕는다는 깃발을 내걸고 그들의 노선을 일부 수정할지도 모르겠죠. 과거의 노선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북한이 대외관계를 맺기는 어렵습니다.
뭔가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김=저쪽의 대내사정으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 체제로 본격화시키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듯 합니다. 김정일 체제가 무슨 민족적인 정권이나 되는 것처럼 위장하려하고 있지요. 이번에 남한동포를 구호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북한주민들에게『우리는 더욱 열심히 일해야한다』는 식으로 체제강화나 강제노동을 시켜 남한에 보내는 물건값 이상으로 대가를 얻어낼지도 모르지요.
대외적으로는 버마 아응산 테러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더럽혀진 이미지를 씻기 위한 계략도 있다고 봅니다. 전쟁을 획책하는 집단, 반민족집단, 무뢰한의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계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들의 문제이지요. 그래서 북쪽이 잘 살수 있게 된다면 나쁠 것도 없습니다.
양=북의 제의에 대한 북경이라든가 목적,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도 국민들은 이미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북쪽이 이번 제의를 한 것을 계기로 우선 대화다운 대학가 이뤄지고 북이 지금까지 남한에 대한 정세평가를 잘못했던 것을 고쳐주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남한에 절량민이 많다 든가, 실업자가 우글거린다든가 미국에 종속돼 있는 것처럼 선전만 일삼아 오던 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소위북쪽에서 자주 쓰는「빈말공부」(말장난)밖에 안되지요.
이번 제의의 수락으로 우리의 반공기반이 흔들리지나 않나 하는 기우도 일부에서는 있는 것 같은데….
김=그런 기우는 충분히 극복될 것으로 봅니다. 결국 역사는 앞으로 나가는 것 아닙니까. 제가 자유중국에 갔을 때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중공에서 인공위성발사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 그곳 석학들은 인공위성발사가 모택동이나 중국공산당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같은 한민족의 경사라고 기뻐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민족문제에 있어서는 관용성과 관대 성, 그리고 소인다운 자세를 떨쳐버리고 대인다운 자세와 역사의 객관적 요청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합니다.
남북을 비교해 놓고 볼 때 이북이 물자가 모자라고 경제적 곤란을 받고있다는 사실은 세계가 다 아는 일이죠. 수재민대책이 없어서 만부득하게 쌀과 시멘트를 받는 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겠지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동족사회에 일어난 수해에 대해 동족이 구호의 손길을 보내오는 것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우리도 앞으로 북한에서 수재민이 생기면 이보다 더 큰 열성과 동포애로 구호의 손길을 보내게될 것 아닙니까.
양=남북관계는 결국 화해와 실질적인 교류·동포애적인 교환이 현실화되어야 풀려 나갈 수 있지요. 대화는 양쪽이 자주 접촉해야 이뤄지고 대화가 원활히 이어지면 기류가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긴장완화·전쟁억제 및 적대관계의 해소가 달성되고 평화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할 것은 반대도 해야겠지요. 반대와 대화 두 가지 다 한반도의 전쟁억제와 평화달성에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미소관계가 그렇지 않습니까. 전쟁을 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상호포로를 교환하듯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해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좋은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조치가 우리의 가치관의 갈등을 가져온다고는 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김=북쪽은 지금까지 우리가 제의한 어떤 남북 간 인적교류나 경제적 교류도 무조건 반대해왔는데 우리로서는 통일을 위해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엿 보이면 잘 포착해 민족통일의 길에 접근하는 것이 민족적 시대적 요청이기에 지금까지 꾸준히 노력해 왔지 않습니까.
결국 누가 민족적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봉사하느냐는 것이 문제이고 그것을 위한 실천의지가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로서는 확고히 부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부정해야 하겠지만 민족 주체적으로 극복해야할 일은 의연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양=적어도 우리는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동서독관계 정도는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양측이 불필요한 민족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번 제의를 구체화시키는데는 역시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요. 우선 인수·인계를 위한 절차를 논의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주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가 받으러 가든 저쪽에서 가지고 오든 인적교류는 필연적인 것이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김=그렇습니다. 북쪽에서 노동당 간부가 오든 우리 쪽에서 누가 가든 인사 왕래만이라도 실현되면 물건은 안 줘도 남북 간의 긴장완화에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동족끼리 전쟁을 피하고 민족의 통일이 최고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북쪽사람들이 느낄 수만 있어도 남북관계에서는 발전입니다.
양=준다고 하다가 또 무슨 트집을 잡아 일을 그르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만 이번만은 그런짓 안 했으면 좋겠어요. 북쪽에서 이제까지 우리가 제의한 서신왕래를 거부해 왔지만 이번 기회에 이 문제도 재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품까지 보내겠다면서 서신왕래를 못하겠다는 것은 납득이 잘 안가는 일 아닙니까.
김=아마도 북쪽에서는 그들의 제의를 우리측이 받아들인 것에 대한 충격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측이 조건 없이 북적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우리국민들의 자신감을 나타낸 것입니다.
서울에서 받는다고 했으니까 이젠 북쪽에서 정말 주느냐 안 주느냐가 세계의 관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양=과거를 생각한다면 뻔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적십자 차원에서 본다면 어려운 문제도 아닙니다. 일단 긍정적으로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이번 일이「빈말공부」가 아니고 진정한 민족공동체의 재건을 위한 기초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기록=김재?·엄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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