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변수연초부터출렁] 환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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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원-달러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떨어진 가운데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외환 딜러들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원화 가치가 연초부터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 여파 때문이다. 1분기 중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상을 중단할 가능성이 커진 반면 고질적인 쌍둥이(재정.무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국제 외환시장에선 지난해 말부터 달러화 약세가 예견됐다.

문제는 원화 가치의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달러화 약세를 감안하더라도 원화 가치가 다른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세 자릿수로 떨어지자 수출 기업들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그동안 1050원을 기준으로 올해 경영 계획을 세웠던 상당수 기업으로선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수출액 달성에 차질을 빚게 된다.

◆ 원화 강세 어디까지=JP모건은 원-달러 환율이 올해 95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는 "JP모건 아시아 외환 리서치 책임자인 클라우디오 피론이 이같이 말했다"고 4일 보도했다. 피론은 "한국은 올해 경기회복의 탄력이 강하고 주식시장도 활황세를 지속하고 있다. 원화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통화로 올해 5.7% 절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연구기관들도 원화 강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현대경제연구원 노진호 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것은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곧 멈출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며 "당분간 900원대 후반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심리적 저지선인 1000원이 무너졌다"며 "950원까지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무역수지 흑자가 워낙 커 해외로부터의 달러 유입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날부터 위안화 장외 거래를 허용한 것도 원화 강세를 부채질할 전망이다. 은행 간 현물 외환 거래를 위해 위안화 장외거래(OTC)를 허용하기로 한 첫날 위안화 가치는 예상대로 강세를 보였다. 이는 미 달러화 약세를 초래해 원화 절상 압력을 가중시킨다.

◆ 외환 당국 긴장=지난해 엔화와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13%씩 가치가 떨어졌지만 원화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최근 원화 가치 급상승은 지난해 하락하지 못했던 요인까지 한꺼번에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원화 가치가 치솟자 재정경제부 권태균 국제금융국장은 "환율이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쏠리면 한국 경제에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이다. 그는 이어 "미국 금리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올라 당분간 엔화와 유로화와의 금리 격차 축소에 따른 달러화 가치 하락 가능성을 예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환율이 일시적으로 1000원 선으로 반등하기도 했으나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은행도 과도한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화 매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외환보유액이 세계 4위 규모인 2100억 달러를 넘어선 만큼 추가로 사들일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 기업과 개인들의 환(煥)테크=갑작스럽게 원화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일단 달러화 금융상품에 투자하거나 달러를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보고 있다. 원화로 바꿀 때 손에 쥐는 돈이 줄기 때문이다. 현금보다는 신용카드를 쓰고 해외송금은 최대한 늦추는 게 좋다. 자녀에게 보낼 달러를 더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펀드 투자는 환위험 회피가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

기업들은 업종별.기업 규모별로 입장이 다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연구원은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반도체.조선 등은 채산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은 "대기업은 나름대로 대비가 돼 있어 중소기업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호.김준술 기자 <dongh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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