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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SD 첫 시험대 … 첫날부터 기싸움 팽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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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심리가 개시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간 국제 중재 사건은 한국 정부가 투자자·국가간 소송 (ISD) 수행 능력을 평가받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ISD 제도로 피소된 첫 사례인데다 소송 가액만 5조원 이 넘는 초대형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론스타는 당초 43억 달러이던 청구 금액을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해’ 등을 이유로 최근 46억7900만달러(5조1000억원)로 증액했다.

 워싱턴 현지에 가 있는 정부 측 법률 대리인은 17일 “첫날부터 기싸움이 상당했는데 론스타가 요청한 외환은행 매각 당시 국내 금융 정책 책임자들이 다음주부터 증인으로 출석하면 더욱 치열한 공방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합동대응팀을 이끄는 김철수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은 “타협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지만 론스타로부터 어떤 제안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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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은 크게 ▶매각지연 손해 ▶세금 부과로 인한 손해 등 두 가지다.

 지난 15일부터 오는 24일까지 10일간 열리는 1차 심리에서 양측은 외환은행 매각 지연이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때문이었는지를 두고 다툰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에 외환은행을 5조 9376억원에 넘기려고 했지만 이듬해 9월 계약이 파기됐다. 이후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외환은행을 매각했다. 매각승인 지연으로 2조원을 ‘싸게’ 팔면서 손해를 봤으니 이를 한국 정부가 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론스타는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낸 중재 의향서에 한국 당국의 ‘괴롭힘(harassment)’과 ‘적대적 여론’을 수차례 거론했다. 불필요한 적격성 심사로 매각의 적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당시 외환은행 헐값매각 소송 등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매각 승인을 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전광우·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당시 금융 정책 책임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신문에 응할 것으로 보인다.

 또 6월 29일부터 10일간 진행되는 2차 심리에선 론스타에 부과된 각종 세금이 정당했는지를 놓고 격돌한다.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은 론스타의 벨기에 법인인 LSF-KEB 홀딩스에 인수됐다. 이 때문에 한·벨기에 투자보장 협정 적용 대상이라는 게 론스타 측 주장이다.

 외환은행이 하나은행에 매각될 당시 국세청이 원천징수한 3915억원 등 론스타에 부과된 각종 세금 8500억원도 돌려받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이자·환차손과 벨기에에 납부할 예정인 세금 등이 더해졌다. 정부 측의 한 관계자는 “론스타는 기상천외한 셈법으로 9년간 한국에서 챙긴 수익(4조7000억원)보다 많은 금액을 청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중재 절차는 모두 비공개라 결과를 전망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서 진행된 론스타 관련 세금 재판 결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론스타의 벨기에 법인은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라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 국제 협약이 체결된 경우에도 조세의 회피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과세는 정당한 것으로 본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한국 법원 판단이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세 부문은 국제적으로 공통된 게 많아 중재 판정단의 주요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제 중재에선 국가의 정책적 고려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자의 자산 가치 감소가 투자협정을 위반하는지만을 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불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ISD중재는 3명으로 구성된 중재판정부의 다수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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