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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만화의 상상력을 빌려 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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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60만 권 이상 팔린 박소희씨中의 만화 ‘궁’左이 새해 MBC 20부작 수목드라마右로 만들어진다.
[사진 제공=서울문화사·에이트픽스]

어른들은 잘 모르지만, 만화 '궁'에 보내는 신세대의 절절한 애정은 연재 3년이 넘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2002년 7월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2003, 2004, 2005년 내리 3년 연속 문화관광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만화대상'의 인기상을 거머쥐었다. 독자들이 직접 선정하는 '독자 만화대상'의 장편상도 2003, 2004년 연속으로 수상했다(2005년분은 집계 중이다). 10권까지 나온 단행본은 이 불황에 60만 권 이상 팔렸다. 고사 직전의 한국 출판만화 시장에서 '궁'의 행진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작가 박소희(28)씨는 조심스럽다. "여전히 부족한 게 많지요. 하지만 제 만화를 보는 분들이 저와 함께 즐겁고 유쾌해지리라는 생각, 그런 공감대가 저를 지탱해주고 있어요."

'궁'의 배경은 '입헌군주국 대한민국'이다.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 세자가 살고 있다. 그리고 평범한 신분의 여고생 신채경은 할아버지끼리의 약속 때문에 왕위 계승자인 세자 이신과 갑작스러운 정략 결혼을 하게 된다. 여기에 세자의 사촌 이율, 세자의 첫사랑 성효린이 끼어들면서 열일곱 청춘들의 사랑과 질투가 여과없이 그려진다. 이와 함께 궁중 내 세자 교체 음모가 배후로 깔리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 간다. 왕자님.첫사랑.결혼.꽃미남 꽃미녀.음모론.성장 드라마 등 순정 판타지를 위한 코드가 가득한 셈이다.

"1994년께인가 고등학교 때 땡땡이를 치고 경남 김해 김수로 왕릉으로 친구들과 놀러간 적이 있어요. 그때 누각들이 쓸쓸히 비어있는 모습을 보고 '여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공상하다가 '지금도 임금님과 왕자님이 경복궁에 살고 있다면'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죠."

'입헌군주제'라는 기발한 발상 외에 이 만화의 미덕은 순정만화임에도 코믹 요소가 매우 강하다는 데 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슬램덩크'에서 적절히 써먹은, 멋진 삽화체와 익살스러운 개그체 그림의 절묘한 조화는 이 작품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청순가련한 채경이 침대에 누워있는 신의 등짝을 보며 가슴을 두근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는 엽기적인 모습으로 망가지는 장면이 대표적. "예쁘면서도 웃기고, 솔직하면서 당돌한 채경의 모습에 많은 독자가 쉽게 감정 이입을 한다"는 것이 '궁'을 맡고 있는 '윙크'윤지은 기자의 귀띔이다. 이러니 윤은혜.주지훈.김정훈.송지효라는 '사람'이 등장하는 드라마 제작 얘기가 나왔을 때 독자들이 캐스팅을 놓고 뜨거운 설전을 벌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만화는 소설에 비해 시각적이라 그런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때 늘상 논란이 되곤 한다"며 "하지만 다른 장르로 옮겨질 경우 그만큼의 상상력이 더해져야 하며 이 부분은 원작 팬들이 넓은 아량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궁'의 제작사인 '에이트픽스'의 송병준(46)대표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상물에 대해 "우선 비주얼이 있어 영상화가 편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소재로 활용하기가 쉽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만화에서만 가능한 판타지를 화면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드라마 성공을 위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궁'을 위해서는 경기도 오산에 15억원짜리 궁중 세트장을 짓는 등 총 52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현실에는 없는 '대한민국 황실'과 궁중 인물들을 재현하고 있는 중이다. 4일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선보인 이 드라마는 19세기 황실과 21세기 디지털 세계가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자막이 둥둥 떠다니는 만화 같은 경쾌한 장면이 돋보였다.

'궁'은 드라마뿐 아니라 신세대 작가 이윤아씨의 소설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만화와 드라마, 소설의 결말이 모두 다르다는 것도 관전 포인트. 이미 일본과 대만에서는 만화가 번역출간됐으며 미국.프랑스.태국.인도네시아에서도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일왕이 살아 있는 일본 쪽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후문이다. 관련 다이어리나 문구류 등도 인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만화가 히트를 쳐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은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는 차원에서 본명 좋은 징조입니다. 그것이 만화를 '사서 보는' 풍조로 이어져 인재와 자본이 만화계로 유입된다면 더욱 재미있는 만화가 나올 수 있겠죠."

인터넷 시대,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작가'임을 고집한다. 도톰한 도화지에 펜으로 그린 원고를 잡지사로 배달한다. 그 '손맛'을 아직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이란 게 만화엔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불법 다운로드나 공유 같은 실이 있다면, 기회와 공간의 확대라는 득이 있기도 하고. 그것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디지털 문명을 증오하는 저의 정신 개조부터 해야겠죠?"(웃음)

정형모 기자

‘변신’ 하는 만화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최근의 주요 트렌드다. 드라마 '다모'(2003년), '풀하우스'(2004년) '불량주부'(2005년)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박소희.강풀.B급달궁 등 신세대 만화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특히 괴력의 만화가 강풀(32)의 장편 4작품은 모두 연내 개봉이 추진되고 있다. 순정물 '순정만화'와 '바보(사진(上))'는 각각 '꽃피는 봄이 오면'의 류장하 감독과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김정권 감독이 진행 중이다. '바보'의 주연은 차태현(下)으로 낙점됐다. '순정만화'는 지난해 대학로에서 연극으로도 공연됐다. 또 공포물 '가위''폰'의 안병기 감독이 고소영을 내세운 '아파트'를, '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이 '타이밍'을 준비하고 있다.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도 지난 연말 촬영을 마치고 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쾌락의 명문 '무쓸모 고등학교'에서 펼쳐지는 엽기 순애보로 이켠.김옥빈 등 신세대 연기자들을 포진시켰다.

또 만화가 허영만의 '타짜'는 영화로, '식객'은 드라마로 제작이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종격투기 붐에 힘입어 이현세의 '지옥의 링'도 한.일 합작 드라마로 만들어져 일본에서 방영될 전망이다.

'궁'의 제작사인 '에이트픽스'는 김혜린의 만화 '비천무'를 지난해 6월 사전제작방식으로 만들어 일본에 수출했다. NHK를 통해 연내 방영이 유력하다. 국내 방영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에이트픽스'의 송병준 대표는 "김수용의 만화 '힙합'도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다"며 "'동방신기'가 주인공을 맡는 것으로 SM엔터테인먼트 측과 구두합의를 마쳤으며 대만의 인기그룹 F4도 출연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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