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가수가 10만원…'가요 프로 출연료 괜찮아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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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중견 가수가 있다. 새 앨범으로 컴백하면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리는 곳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다. 컴백하는 주에 KBS 2TV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를 모두 출연했다.

당연히 수백만원의 돈이 들었다. 한껏 힘을 준 의상부터 헤어·메이크업 비용에 여덟 명의 댄서들에게도 돈이 지급됐다. 이 비용은 솔로 가수 기준이다. 정상급 아이돌 그룹이라면 이 비용은 수억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에 이 10년차 솔로 가수에게 지급된 출연료는 도합 40만원 뿐이다. 3개 방송이니 3으로 나누면 각 13만 3000원씩을 받은 셈이다. 가수와 스태프들의 점심 도시락 값 정도다.

▶터무니 없이 적은 출연료

10만원이란 돈은 가수들의 노력과 투자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엔 턱없이 적다. 가수들은 그날 생방송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드라이 리허설, 카메라 리허설을 한다. 중간 중간 프로그램에 쓰일 영상도 따줘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생방송에 들어간다. 해뜨자마자 출근해, 방송이 끝나는 오후에야 퇴근한다. 사실상 이날은 그 어떤 스케줄도 잡기 힘들다.

심지어 사전녹화라도 있는 날이면 새벽 5시에 졸린 눈을 비비고 기상해, 준비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방송국 내 좁은 대기실에서 '스탠바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엔 손에 쥔 출연료론, ‘헤어 손질 값도 안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얘긴 10년도 더 된 얘기기도 하다.

앞서 밝힌 10년차 솔로 가수의 경우, '인기가요''뮤직뱅크'에서는 10만원, '쇼! 음악중심'에서는 20만원을 지급받았다. 5~6년차 아이돌 그룹의 경우엔 '인기가요'는 10만원으로 동일했고, '뮤직뱅크'는 35만원으로 25만원이 더 많았다. '쇼! 음악중심' 역시 30만원으로 10만원이 더 많았다. 정상급 그룹 이야기다.

신인 그룹의 경우엔 '인기가요'는 10만원으로 동일했고, '뮤직뱅크'에서는 20만원, '쇼! 음악중심'에선 15만원을 받았다. 정리하면 '인기가요'는 솔로나 아이돌, 멤버수에 관계없이 10만원으로 동일했다. 가장 적다. '뮤직뱅크'와 '쇼! 음악중심' 역시 15만원부터 35만원까지 가격이 달랐지만, 차이는 미비했다.

▶이 돈받고 출연 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홍보 효과가 기대만큼 엄청난건 아니다. 시청률이 바닥을 찍은지는 이미 한참됐다. '뮤직뱅크'의 5월 8일 시청률은 1.7%에 불과하다. '인기가요'와 '쇼! 음악중심' 역시 3% 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백하는 가수들에게 방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컴백 전에 언론사와 사전 인터뷰를 하고 나면, 무대를 보여줄 곳은 방송 밖엔 없다. 그래서 가요 매니저들은 오늘 하루도 'PD님'을 알현하기 위해 방송국 예능국 앞에 길게 줄을 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송사의 오랜 '갑질'이 가능해졌다. "신곡을 피알하려고 출연하는데, 출연료를 많이 줄 필요가 없다"는 식의 입장이 가능해졌다.

한 가요 기획사 중견 간부는 "출연료 정책이란 게 도통 알 수가 없다. 오르지도 않을 뿐더러, 가끔 적어질 때도 있다. 무슨 기준으로 산정한 건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고 했다.

다른 기획사의 임원은 "일주일 내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있어서 가수들에게 쉴 틈을 주고 싶지만 출연 거부란 건 있을 수 없다. 비단 가요 프로그램 뿐 아니라, 예능국 전체가 한 묶음으로 보면 된다. 출연료 얘긴 엄두도 못 낸다. 돈 몇 푼 더 받자고, 예능국 전체와 인상 찌푸릴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했다.

엄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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