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음맞은 ‘포차친구’ 집에 데려와보니 절도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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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기 좋네요. 어머 정말 둘이 잘 어울린다”

지난 1월 말, 서울 장안동 경남관광호텔 뒷골목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던 김모(27ㆍ여)씨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옆 자리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이모(39ㆍ여)씨였다. 술 기운이 약간 오른 상태인데다 자신들을 칭찬해주는 이씨에게 김씨 커플은 금새 마음을 열었다. 이내 셋은 의기 투합했고, 합석까지 했다. 특히 김씨는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성격이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는 이씨와 급속히 친해졌다. 이씨는 김씨에게 “남자친구와 결혼할 사이냐” “나도 남자친구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 잘 어울리는 남자친구가 있는건 정말 부럽다”는 식으로 말하며 김씨의 기분을 띄워줬다고 한다.

술자리가 어느정도 무르익자 이씨는 김씨에게 “너네 집에가서 한 잔만 더 하자”고 말했다. 김씨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는 남자친구를 보낸 뒤 장안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 이씨를 데리고 갔다. 둘은 김씨의 집에서도 새벽녘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한 김씨는 만취한 채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포장마차에서 만난 즉석 ‘포차친구’는 딱 하룻밤만 친구였다. 김씨가 다음날 오전 9시 30분쯤 눈을 떠보니 이씨는 이미 떠난 뒤였다. 이씨는 김씨의 백팩ㆍ휴대전화ㆍ손목시계ㆍ화장품 등 200만원 어치의 물품도 함께 갖고 도망갔다. 그제서야 속았다고 깨달은 김씨는 이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전화번호도 모르는 이씨를 찾기는 어려웠다. 경찰은 포장마차 인근의 폐쇄회로(CC)TV를 뒤져가며 이씨를 추적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CCTV가 없는 구역이 많아 이씨의 동선이 자주 끊겼기 때문이다.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김씨 앞에 이씨가 다시 나타난 건 지난 8일 자정. 사건이 발생한 포장마차를 우연히 지나던 김씨 커플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이씨를 발견한 것이다. 이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서울 동대문 경찰서는 김씨의 휴대전화ㆍ화장품 등 200만원의 물품을 훔친 혐의(절도)로 이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특별한 직업이 없던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도 몰래 욕심이 생겨 우발적으로 물건을 훔쳤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동대문 경찰서 관계자는 “이씨가 계획적으로 김씨에게 접근해 범행을 저질렀는지, 여죄가 있는지 등을 추가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임지수 기자 yim.ji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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