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선진경제로 가는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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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엇이 잘못되었나? 천정부지로 치솟아 자연낙하를 거부하는 석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 중국.인도 등 거대 신흥경제의 세계공장화, 국경을 넘나드는 외국자본의 농간 등 대외적 요인들을 귀책 사유로 지적하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잘못의 소재는 국내에 있다.

한국 사회는 자해(自害) 요인들이 산재한 지뢰밭이다.

첫째, 우리는 낡은 생산 개념의 노예로 남아 있다. 18세기 후반 애덤 스미스의 전형적 노동자는 유형의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배우의 연기, 교수의 강의처럼 만들어지는 순간 소멸하는 무형 서비스의 가치창출을 무시했다. 그는 산업 사회 이후 서비스 사회의 도래를 예견하지 못했다. 21세기 세계경제는 제품의 연구개발.디자인.브랜드는 선진국이, 조립생산은 신흥경제권이 담당하는 분업적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고, 후자보다 전자가 챙기는 부가가치가 월등히 크다. 우리가 공장 노동자와 농민을 천하의 큰 뿌리로 여기는 한에는 후진의 멍에를 벗을 수 없다.

둘째, 산업사회의 노동력은 그들 작업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천편일률적인 교육으로 대량 생산될 수 있으나, 지식사회에는 각인각색으로 다양하게 개인별 특기를 살리는 교육이 요구된다. 오래전 용도 폐기했어야 할 교육평준화에 정부와 전교조가 여전히 목을 매고 있다.

셋째, 대량 교육이 학문의 수월성을 저해하듯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평등주의가 시장과 경쟁을 백안시한다. 사람의 부귀를 간악함과 정비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만큼 역사상 영웅이 적은 나라도 없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경제 기적을 이룩한 경제영웅들은 있지만 모조리 흠집투성이로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귀감을 잃게 했다. '꿀벌의 우화'(18세기 맨드빌 작품)의 지적처럼 개인들이 탐욕 때문에 부를 축적하도록 내버려둬야 사회적으로 이익(고용 창출, 조세, 사회기부 행위)이 돌아오는 법이다. 금욕하는 수도승은 혼자 저승의 낙원에 갈 수 있을지언정 탐욕스러운 사업가처럼 이승에서 수천, 수만 명을 먹여 살리지는 못한다.

넷째, 시장경제는 상품의 소유권이 보호되고 거래계약이 지켜지는 풍토에서만 꽃피는 예민한 화초다. 정부는 법 집행과 질서 유지에 힘써 주어야 경제활동의 맥박이 힘차게 뛴다. 밖으로는 대북관계가 불안하다. 안으로는 노사분쟁 현장에서 대부분의 경우 공권력이 전투적 노조 앞에 무력하다. 사기.무고 등 민형사 사건 발생이 이웃나라보다 몇 곱절이나 높다. 사고 때마다 가족 시체를 미끼로 보상금 흥정이 다반사다. 몇 해마다 되풀이되는 농가 부채 탕감, 카드 신용불량자 구제 등 정치권이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킨다. 허위가 보상받고 정직이 징계되는 사회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끝으로 중요한 사실은 정상적 경제 활동인들이 느끼는 적반하장의 분개감이다. 예전에 시장상인 갈취하는 건달들은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요즘 기업의 비자금 지원받는 정치적 인사들은 때로는 여의도로 진출해 존경받는다. 어쩌다 법망에 걸리면 받은 자보다 준 자들이 처벌받는 경향이 짙다.

경제 선진화의 첫발은 이런 쓰레기 청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