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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검은돌흰돌] 바둑계도 시즌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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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연말을 결산하는 축제들이 사방에서 열리고 있다. 스포츠에선 어떤 종목은 시즌을 끝내고 스토브리그에 들어갔고 어떤 종목은 새로 시즌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온갖 시상이 따르는 축제가 팬들과 함께 열리곤 한다.

바둑은 유일하게 '시즌'이 없는 종목이다. 20여 개의 대회가 얽히고 설킨 채 하염없이 돌아갈 뿐이다. 그래서 시즌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애석하게도 축제도 없다.

바둑계에도 1년을 결산하는 바둑대상 시상식이 있다. 그러나 2005 바둑대상 시상식은 2006년 1월 5일에나 열린다. 2005년 12월 30일까지 대회가 이어져 있어 최다승이나 최고 승률 등을 미리 가릴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러나 이 바람에 효과는 반감되고 만다. 남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새해를 시작하는 그때 바둑계는 한해를 결산하는 팡파르를 울리고 있으니 반향이 클 수가 없다.

바둑에는 왜 시즌이 없을까. 대회가 6개월~1년씩 장기간에 걸쳐 열리는 데다 국내대회와 국제대회까지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대회는 준결승이 끝났는데도 결승전 일정을 잡지 못해 미정으로 남겨둔다. 한국기원 담당직원들은 일정을 잡느라 머리가 하얗게 셀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 일정이 연기되거나 뒤바뀌는 일은 비일비재로 벌어진다. 그러니 날을 잡아 시즌을 끝내고 새로 시작되는 일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다.

왜 이런 전근대적인 일이 바둑계에서는 계속되는 것일까. 한국의 바둑 실력으로 볼 때 새까만 하수들이 출전하는 2006년 유럽 선수권전은 지난 여름에 이미 일정과 장소까지 확정된 상태다. 그러나 한국의 2006년 대회는 온갖 이유로 인해 태반이 미정이다. 바둑은 고수지만 진행방식은 서양에 비해 한참 하수다.

2005년이 다 가는 이때 달콤한 공상을 해본다.

2006년 8월 ×일, 한국기원이 2006~2007년 시즌 시작을 알리는 축제를 연다. 전 프로기사와 바둑계 인사들, 팬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모든 기전의 스케줄이 발표된다. 이 스케줄은 어떤 경우에도 바뀌지 않는 것이기에 그걸 보며 프로들은 자신의 1년 일정을 잡고 방송사나 인터넷 사이트 등도 계획을 세운다. 2007년 6월 ×일 , 시즌이 끝난다. 그날 1년간의 MVP 등 각종 시상이 펼쳐지고 바둑계는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이 기간 중 프로들은 어린이나 학생들의 바둑 지도를 하거나 유럽 등 서양 쪽으로 가 바둑 보급활동을 한다. 1년간 사투를 벌여온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도 생전 처음 편안하고 긴 휴가를 떠난다.

참 쉬운 일이고 남들 다 하는 일인데도 바둑계만은 안 된다. 어렵다고만 한다. 2006년엔 변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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