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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시집「조국의 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80년대에 들어와 우리 시단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바인데, 필자는 근자에 간행된 시집과 잡지들을 뒤적이면서 그 사실을 더욱 실감 있게 확인할 수 있었다. 월여전에 나온 『시인』지 2집을 포함하여 『세계의 문학』 『외국문학』 『오늘의 책』등 계간지들의 여름호에서 겹치기로 나온 시인만 보더라도 이성부·김광규·김정환·김용택씨등이 각각 10편씩 발표하고 있으며, 특히 고은씨는 무려 30편이 넘는 신작을 내놓아 그 왕성한 창작능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출판사의 기획시집도 한꺼번에 서너 권씩 간행되고 있어, 최근 우리는 고은 시집 『조국의 별』, 조재훈시집 『겨울의 꿈』, 하종오시집 『사월에서 오월로』, 나해철시집 『무등에 올라』(이상 창비시선), 문익환 시집 『땅의 평화』, 김정환 연작시집 『황색 예수전·2』, 정규화시집 『농민의 아들』(이상 실천문학사), 김희주 시집 『뱀딸기의 노래』, 김율경시집 『갈문리의 아이들』,
박몽구시집 『거기 너 있었는가』, 박영근시집 『취업 공고 판 앞에서』(이상 청사) 등 주목할만한 업적들을 이 나라의 문학적 자산에 듬뿍 보태게 되었다. 오승강 시의 『분교마을 아이들』과 윤동재씨의 『재운이』는 비록 어린이와 소년을 위한 시집이기는 하나 위의 시집들과 함께 거론되어 마땅한 우리시대 시운동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십수년전에 잠깐 나왔다가 문득 자취를 감추었던 김지하씨의 첫시집『황토』가 새 모습으로 선을 보인 것도 이런 움직임 속에서 가능했던 하나의 삽화일 것이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배창환·도종환 김용락 김창규등 충북과 경북에 거주하는 젊은 시인들의 동인지『분단시대』가 의욕적으로 출범한 사실이다. 필자는 이들이 패기 있게 전개되어온 80년대 동인운동의 자기확정 과정에서 장차 큰 몫을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시는 근년에 문학운동의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눈에 띄게, 그리고 사회활동의 다른 부분에 비해서는 이상할 만큼 질적인 비약을 이룩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오늘 한국시는 지난날 자주 논의된 난해성 시비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봉건양반적 도피문학의 재생산형태인 일련의 순수주의를 시원스럽게 극복하고 있으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유 있는 자세로 전통적 율격과 민중적 감정의 싱싱한 결합에 성공하고 있다.
가령, 김용택씨의 『밥값』같은 작품에서 생기 있게 재생된 가사형식, 신경림씨의 「씻김굿」「달 넘세」같은 작품이 이룩해 낸 민요 내지 무가형식의 현대적 수용, 조재훈씨의 「갈꽃을 보며」가 모범적으로 제시한 이야기 시의 틀, 그리고 하종오씨의 시들이 끊임없이 모색하는 새로운 리듬 등은 한편으로 지난 전통의 활용이기도 하지만 다를 한편 우리시대의 민족문학자들이 힘들여 모색해나가고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이 시대의 민중정서에 창조적으로 대응되는, 그리고 모국어의 현 상태에 굳게 입각한 최선의 언어적 선택이기도 하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보여 주는 것이 고은씨의 작품으로서, 그는 어떤 종류의 굳어진 형식도 거듭 깨뜨리면서 활달하고 자유롭게 또 치열하게 이 시대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집 『조국의 별』은 물론 80년대적 상황의 시적 증언이자 고통과 시련을 넘긴 삶이 얻어낸 지혜의 기록으로서도 거듭 검토되어야겠지만, 그 얽매이지 않은 자유자재한 형식과 분방한 언어의 측면에서도 앞으로 우리에게 쉽게 고갈되지 않을 낙관의 근거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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