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서울손님」과 붐비는 공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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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교민들이 대체로 불편해하고 곤혹스럽게 여기는게 몇가지 있다.
프랑스말이 서투르다든가 프랑스 사회나 관습에의 적응이 쉽지 않다든가 하는, 외국생활에서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보다 아무래도「서울손님」의 이해부족이 더 참아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작은 예로 한국식당을 찾는 한국여행자들의 불같은 성미는 언제나 식당주인들을 난처하게만든다.예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자리를 내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식사를 빨리 달라고 성화다.
주위에 다른 손님이 있건 말건 차례를 무시한채 고함을 칠때 식당주인이나 종업원들은 짜증이 낱수밖에 없다.
이런 예는 한국식당에서 뿐아니라 프랑스 식당등에 가서도 마찬가지여서 안내한 교민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많다. 한국식당주인이나 관광안내원 가운데 한국여행자들에게 약삭빠르게 바가지를 씌우려 들거나 불친절 한경우도 흔하지만 파리에선 파리의 관행에 따라야 한다는게 이들의 주문이다.
찾은 공항출입도 파리교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중의 하나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반가운 사람의 공항 마중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초행자건, 그렇지 않은 여행자건 서울을 떠나기 훨씬 전부터 인연이 닿는 파리의 모든 교민에게 연락하게 마련이다. 다른 곳과 달리 언어상의 어려움이 심한 탓이겠으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이른바 「힘있는 사람」들이 전방위 연락을 즐겨 취한다. 서로 아는 대상이건, 아니건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개인이나 기관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기별한다.
그래서 KAL기가 도착하는 목요일과 토요일엔 드골공항이 온통 한국사람들로 붐빈다.연락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모두공항에 나타나는 때문이다.
한사람이 마중해도 좋을 일이건만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 채 몰려들게 만드는 것이다. 말 좋아하는 어떤이가 『KAL이 들어오는날 공항에 가보면 한국사람들 끼리서로 이마를 부딪치기에 바쁘다』 고 우스개 소리를 할정도로 교민들의 공항출입은 어느다른 곳에 비할바가 아니다. 이제 이런 정도의 일은 서로 개선해야할 때다.
한국과 프랑스간에 의료보험협정이 체결되지 않고 있는 것도 교민들의 큰 불안 요소다.납세자등 일부 수혜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민들이 의료보험에 들지 못해 고생하고 있다. 물론 개인베이스로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 납입금이 엄청나 웬만해선 엄두를 못낸다. 의료보험에 들지 못한 교민가운데 큰 수술을 받거나 교통사고등으로 장기간 입원한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집까지 날린 경우도 있다. 정부간 의료보험협정이 어서 체결돼야겠다.
파리의 교민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증에 일부 어글리 코리언의 작태가 있다.
한 한국식당 주방장으로 있던 L씨는 얼마전 주위의 교민들에게서 약50만프랑(약5천만원)을 빌어 쓴 뒤 행방을 감췄다가 빚청산을 위해 다른 식당주방장으로 다시 들어간 일이있다. L씨는 당초 식당 개업을 구실로 빚을 얻었으나 실제론 경마에 빠져 가진 돈을 모두 날렸다.
D그룹회사의 파리지사에 근무하던 K씨는 회사 재직시 선이 닿았던 굵직한 거래선을 물고 전자제품수입상으로 나섰다가 실패했다.무리한 사업확장이 화근이었다.갚아야할 빚이70만프랑이나 된다. K씨의 부인은 최근 자살했다.
몇해전 파리근교의 어느 골프장은 한동안 한국인의 출입을 금지했다.골프를 치던 한한국사람이 뒤따라 오던 프랑스인팀과 시비,골프장에선 좀처럼 있을수 없는 폭력을 행사해 한국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유학생중에도 말썽꾸러기가 많다.
파리의 환락가 피갈에서 시비를 벌이다 경찰신세를 졌던학생도 있다.
일시체류자 가운데 귀국할 생각을 않고 무리하게 남아 있으려다 교민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도 가끔 있다.
귀국발령이 난 모국영업체 직원은 파리에 더 남아있을 궁리를 하다가 북괴공작원의 꾐에 빠지기 직전 구출된 일이있고, 여권기간연장이 뜻대로 안되자 프랑스정부에 정치망명을신청했던 교민도 있다.
모두 몇해전 일이다.
그리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려다 엄청난 추징금을 문식당주인이 있는가 하면 부정한행실로 교민사회에 물의를 빚은 사람도 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이야 어느사회에나 있게 마련이지만 이같은 일들로 인해 모처럼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재불 한인사회가 행여 손상을 입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뜻있는 교민들의 생각이다. <끝>【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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