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화산의 여신이 사는 ‘불의 집’ … 밤하늘에 붉은 꽃 피었네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활화산 분화구 할레마우마우. 낮에는 시커먼 연기가, 밤에는 시뻘건 연기가 치솟는다. 하와이 원주민은 이 펄펄 끓는 분화구 안에 화산의 여신 펠레가 산다고 믿는다.

하와이 제도를 이루는 137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 하와이 아일랜드다. 우리에겐 ‘빅 아일랜드’로 더 익숙하지만, 하와이 주 정부가 하와이 아일랜드로 이름을 통일했다. 이 섬에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국립공원이 있다. 이름하여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이다. 분화구가 밤낮으로 펄펄 끓고 용암이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활화산이 해마다 2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인류는 화산 앞에서 무력한 존재다. 화산 폭발은 인류에게 속수무책인 재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와이 아일랜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들끓는 분화구는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거듭나고, 용암이 덮은 대지는 트레킹 코스로 변신한다. 테마파크가 된 활화산,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을 소개한다.

세계 유일의 드라이브-인 화산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푸우오오 분화구.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안에는 큰 활화산 두 개가 있다. 하나가 해발 4169m의 마우나 로아(Mauna Loa) 화산이고, 다른 하나가 해발 1250m의 킬라우에아(Kilaua) 화산이다. 여전히 활동이 활발한 화산들 덕분에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1348㎢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지리산 국립공원(438.9㎢)보다 세 배 이상 넓다. 하와이 아일랜드 중앙의 마우나 로아 정상에서 킬라우에아를 거쳐 남쪽 해안까지 국립공원에 포함된다. 국립공원 안에는 큰 활화산 두 개 말고도 수많은 분화구가 있다. 제주도에 오름이라 불리는 기생화산이 섬 곳곳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넓은 국립공원 중에서 탐방 구역은 킬라우에아 화산 주변에 몰려 있다.


화염이 대지를 삼키고 있다.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 하와이 화산의 용암은 살아 있었다.

킬라우에아 화산의 분화구 이름이 할레마우마우(Halemaumau)다. 분화구를 에워싼 칼레라 지형의 지름만 4㎞에 달한다. 한라산은 죽은 화산이어서 백록담에 물이 고이지만, 킬라우에아는 살아있어서 할레마우마우가 밤낮으로 연기를 토해낸다. 83년 이후로 킬라우에아는 크고 작은 폭발을 거듭하고 있다.

할레마우마우는 하와이 원주민에게 성지와 같다. 화산의 여신 펠레(Pele)가 이 분화구 안에서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펠레가 태평양에 떠 있는 수많은 섬을 둘러본 뒤 분화구로 돌아올 때면 마중이라도 하듯이 화산이 폭발한다고 한다. 할레마우마우는 ‘불의 집’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쇼로 전락했지만, 애초의 훌라는 펠레를 떠받드는 의식이었다.

학자들은 펠레 신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아일랜드에 정착한 폴리네시안 부족 중에서 킬라우에아 화산 주변에 터를 잡은 부족이 섬을 장악했고, 훗날 부족의 역사를 펠레의 신화로 각색했다. 제법 설득력 있는 해석이지만, 본래의 신화가 더 끌린다.


한낮의 할레마우마우.

할레마우마우는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다. 할레마우마우 주변에 국립공원의 주요 시설이 모여 있다. 탐방센터는 물론이고, 로지 겸 레스토랑 ‘볼케이노 하우스’도 있다.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할레마우마우가 내다보인다. 이른바 ‘화산 뷰’인 셈이다. 볼케이노 하우스는 1846년 문을 연 명소로, 1년 전에는 예약해야 방을 구할 수 있다.

할레마우마우 주위를 한 바퀴 도는 17㎞ 길이의 순환도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지만, 지금은 일부 구간이 통제돼 있어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나올 수는 없다. 그래도 할레마우마우 주변 명소 대부분은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하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이 세계 유일의 ‘드라이브-인(Drive-in)’ 화산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할레마우마우는 밤에 가장 화려하다. 현지 여행사가 할레마우마우 야경 탐방상품을 판매할 정도다. 할레마우마우는 밤낮으로 관광객이 몰린다. 낮에는 뿌연 연기가, 밤에는 붉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할레마우마우 바로 앞의 ‘재거 박물관’이 야경 포인트다. 밤의 할레마우마우는 시뻘건 연기를 연방 내뱉었다. 붉은 연기가 붉은 구름이 되어 검은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활화산을 여행하는 방법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너무 넓었다. 사흘 내내 국립공원 안팎을 헤집고 다녔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탐방 프로그램도 다양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놀거리 널린 테마파크다.

역시 헬기 투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헬기는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여러 분화구 중에서 푸우오오(Puoo) 분화구 상공을 주로 배회했다. 현재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화구다. 시뻘건 용암이 흘러내리는 장관을 약 35m 위에서 내려다봤다. 발 아래에서 용암이 나무를 집어삼켰다. 촬영을 위해 헬기 옆문을 열었다. 매캐한 열기가 확 끼쳤다.

헬기는 섬의 남쪽 해안을 향했다. 3년 전 푸우오오 폭발 때 사라졌다는 마을 터가 보였다. 녹슨 물탱크가 화산암에 반쯤 갇혀 있었다. 옛 마을의 흔적이었다. 용암이 굳은 땅에서 사람들이 다시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마을 옆으로 해안 절벽이 서 있었다. 절벽 아래로 검푸른 태평양이 펼쳐졌다. 헬기 조종사가 하와이 아일랜드는 요즘도 바다에 흘러내리는 용암으로 매일 0.4㎡씩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칼라우에아 이키 트레일을 걷는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온몸으로 화산을 부대끼는 여행도 있었다. 킬라우에아 화산 주변으로 다양한 코스의 트레일이 조성돼 이색 트레킹이 가능했다. 제시카 페라캐인 국립공원 홍보 직원이 추천한 트레일은 세 개였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트레일도 좋았고 할레마우마우를 옆에 끼고 걷는 트레일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킬라우에아 이키 트레일이었다.

‘이키’는 하와이어로 ‘작은’이라는 뜻이다. 킬라우에아 이키 트레일은 할레마우마우 옆의 작은 분화구를 걷는 길이다. 분화구 북쪽 경계를 걷다가 분화구 안으로 내려와 분화구 중앙을 관통하는 6.4㎞ 길이의 코스다.

오히아 레후아.

킬라우에아 화산지대는 열대우림에 속한다. 하여 용암이 지난 땅은 화산암이 덮었지만, 용암을 피한 지역은 울창한 숲이다. 트레일을 걸으면서 가장 자주 만난 하와이 토종식물이 ‘오히아 레후아(사진)’다. 오히아 레후아는 용암이 굳어 암석지대가 됐을 때 맨 처음 싹을 틔우는 식물이다.

이 나무에도 화산의 여신 펠레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오히아라는 총각과 레후아라는 처녀가 서로 사랑을 했는데, 오히아에 반한 펠레가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오히아를 온몸이 배배 꼬인 못생긴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하늘의 신은 홀로 남은 레후아를 가엾이 여겨 레후아를 오히아의 꽃으로 태어나게 했다. 하여 오히아 레후아는 덩굴처럼 엉킨 줄기에 복스러운 붉은 꽃을 피운다. 마침 오히아 레후아 꽃이 만개한 계절이었다.

킬라우에아 이키 분화구 안을 걷는 경험은 특별했다. 이 화산은 59년 분화했고, 분화 이후 122m 깊이의 분화구가 생겼다. 분화구 곳곳에서 연기가 새 나왔다. 122m 아래로 꺼진 땅은 의외로 탄력이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아직 흙이 되지 못한 화산암이 바스라졌다. 문득 발 아래로 용암이 흐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땅바닥이 아니었다. 지구의 껍질이었다. 우리는 지구의 껍질에 매달려 살고 있었다.

◆여행정보=하와이 아일랜드에는 공항이 2개 있다. 힐로(Hilo) 공항과 코나(Kona) 공항이다. 화산 국립공원을 여행하려면 힐로 공항을 이용하는 게 낫다. 힐로 공항에서는 자동차로 45분 거리고, 코나 공항에서는 3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nps.gov/havo) 입장료 자동차 1대 10달러(7일 유효).

항공은 하와이안 항공(hawaiianairlines.co.kr).을 추천한다. 주 5회(월·목·금·토·일) 인천∼호놀룰루 노선을 운행한다. 한국에서 힐로 공항까지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오하후에서 하와이 아일랜드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때도 하와이안 항공이 편리하다. 하와이안 항공이 하와이 제도의 6개 섬을 오고 가는 국내선을 매일 160편 운행한다. 한국에서 출발해 오하후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하와이 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경우, 국내선 항공 요금이 거의 들지 않는다. 미국 관광청 discoveramerica.co.kr, 하와이 관광청 www.gohawaii.com/kr.


하와이 화산 주립공원 공식 홍보영상 [하와이 관광청 제공]


하와이 화산 헬기투어 실제 영상 [블루 하와이안 제공]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gang.co.kr

[관련 기사] │ 미국 국립공원을 가다
① 요세미티 - 거대한 바위절벽 하프돔에 눈 번쩍, 파랑새 노래에 귀 쫑긋
② 데스밸리 - 지옥·천국을 한데 품은, 지독하게 낯선 땅
③ 채널 아일랜드 - 반갑다! 귀신고래 … 희귀 동식물 145종 ‘미국의 갈라파고스’
④ 하와이 할레아칼라 - 맨해튼보다 넓은 거대 분화구 … SF영화에 나오는 행성 같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