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박상옥 동의안’ 직권상정 … ‘야당만의 반대’ 100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새누리당은 6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을 찬성 151표, 반대 6표, 기권 1표로 통과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해 여당이 단독 처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최승식 기자]
이가영
정치국제부문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6일 오후 5시10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세월호 특별법안 처리 때도, 예산안 처리 때도 쓰지 않았던 ‘직권’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상정하는 데 행사했다. “더 이상 미루면 국민에 대한 도리도, 사법부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는 게 정 의장의 간곡한 호소였다.

 그러자 새정치민주연합 박완주·전해철,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줄줄이 동의안 처리를 반대하는 의사진행발언을 하면서 반발했다. 결국 표결은 야당 의원들이 항의 표시로 모두 퇴장한 뒤 여당 단독으로 이뤄졌다. 158명이 투표해 찬성 151표, 반대 6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제출한 지 100일, 대법관 공백 사태가 발생한 지 78일 만이었다.

 야당은 박 후보자 지명 때부터 강력히 반대했다.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박 후보자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박 후보자는 당시 고문경관 수사팀 소속 막내 검사였다. 그는 지난달 7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축소·은폐를 밝히지 못한 건 송구스럽다”면서도 “진실 은폐에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야당은 타깃을 안상수 창원시장으로 돌려 14시간 청문회의 절반가량을 그에게 질문했다. 안 시장은 당시 수사팀 일원으로 고문경관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다. 그러나 안 시장은 시종 “당시 말석 검사였던 박 후보자는 은폐나 축소에 간여할 입장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청문회를 통해 야당이 주장했던 박 후보자의 연루 의혹은 밝혀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자 야당은 “수사 기록을 살펴봐야 한다”며 청문회를 추가로 요청했다. 법무부엔 6000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 전부를 국회에 가져오라고 했다. 법무부 측은 “수사 기록을 통째로 옮기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해 열람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야당은 거부했다. 시간만 흘려 보내던 박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 논의는 4·29 재·보궐선거 국면이 되면서 잊혔다. 그렇게 100일이 흘러갔다. 그 사이 새누리당은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새정치연합 한명숙 의원의 상고심 재판을 늦추려고 야당이 발목 잡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계속 늦춰지면 한 의원의 상고심 재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면 청문회 과정에서 충분히 사실을 규명하고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면 됐을 일이다. 야당 의원들이 투표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반대 토론을 펼치고 일제히 반대표를 던졌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다.

 청문회 과정에선 박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하나도 사실로 밝혀내지 못하고 100일간 ‘묻지마’식 반대만 계속하는 건 낙인찍기나 마찬가지다.

글=이가영 정치국제부문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