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검찰 공소장 바꿔 항소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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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대구 여대생 정모(당시 19세)양 사건. 검찰이 정양 사망 직전 상황을 전면 재구성해 7일 열릴 항소심 공판에 나선다. 재구성한 증거와 증언을 토대로 공소장 자체를 아예 새로 바꾸면서다.

장기 미제로 남아있던 정양 사건을 대구지검은 지난 2013년 다시 수사했다. 17년 전인 1998년 10월 학교 축제를 갔다가 귀가 중인 정양을 끌고가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혐의로 스리랑카인 A씨를 검거해 구속 기소하고 공범 2명을 기소 중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가 부족하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구지검은 항소한 뒤 곧바로 별도 수사팀을 꾸렸다. 최근 유력한 증인을 찾아내 새 증언을 확보했다. 당시 A씨 등 스리랑카 근로자 3명이 정양의 가방에서 책 3권과 신분증·현금 등을 빼갔다는 내용이다. 이 책 3권이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됐다는 세세한 상황까지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성폭행 과정에서 정양이 범인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고속도로 울타리를 넘어갔다가 안타깝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라며 "범인이 이 과정에서 정양의 신분증을 보고 나이가 어려 놀랐다는 증언까지 확보해 새 공소장에 넣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열린 항소심 첫 심리에서 A씨는 "나와 관련 없는 사건"이라며 혐의를 거듭 부인했다. 검찰은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해 선고를 하면 2001년과 2005년 스리랑카로 각각 돌아간 또 다른 2명의 범행 가담 추정자에 대해서도 국내 소환 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정양 사건은 부정(父情)이 딸의 억울함을 풀었다는 사실로 주목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1998년 당시 정양이 사망한 고속도로 부근에서 여자 속옷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이후 정양의 아버지는 생업까지 제쳐두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항고·재항고·헌법소원에 진정·탄원, 경찰관 고소까지 하면서 "악성 민원인"이라는 꼬리표까지 달았다고 한다. 대구고법은 7일 오후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연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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