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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귀농·귀촌 가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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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田園日記).’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방영한 최장수 한국 드라마입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불러일으켰죠. 드라마가 종영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신(新) 전원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회색빛 빌딩 숲을 떠나 농촌이나 어촌에서 인생 2막을 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땀 흘려 밭을 일구고 농산물을 재배하는 귀농,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귀어, 펜션을 운영하거나 문화장터를 여는 귀촌 등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전원생활은 뭘까요. 이번 기회에 알아보시죠. 단, 스타벅스와 24시간 편의점 없인 살 수 없다는 분들은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전원이 준 가장 큰 선물 ‘가족과의 시간’
무상 임대 활용하면 큰돈 없이도 정착

2012년에 경기 의정부에서 충북 괴산으로 귀농한 박중애씨가 남편 윤제연씨, 자녀들과 함께 집 근처 옥수수밭을 찾았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옥수수밭은 1983㎡(600평) 규모다. 박씨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직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2163시간. 지난해 OECD가 발표한 한국인의 근로시간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1년 동안 매일 5.9시간 꼴로 일했다는 의미다. 강도 높은 업무 외에도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는 많다. 취업난, 고용불안, 조기은퇴 등. 회색빛 답답한 빌딩 숲을 떠나 초록빛 전원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이유다. 1997년 외환위기(IMF) 직후에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게 귀농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귀어·귀촌 등 종류와 형태도 다양해졌고, 젊은 사람들의 이주도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다.

30대 이하, 60대 이상 이주 급증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 귀농·귀촌인구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4만4586가구로 전년도에 비해 37.5% 늘었다. 여전히 5060세대가 전체 50% 이상을 차지하지만 30대 이하 가구도 2010년에 비해 12.7배 증가했다. 60대는 769가구에서 1만2656가구로 16.5배 늘었다.

귀농과 귀촌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부부가 함께 귀농해 농사일에 전념하는 귀농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농사 외에 농장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도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귀촌 인구가 늘었다. 최윤지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관은 “2008년 이전에는 ‘농업에만 전념’하는 사람이 전체 44.5%였지만 2013년 이후에는 38.5%로 낮아졌다”며 “농어촌에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게 하나의 활력소가 됐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형성해 귀농·귀촌하는 이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같은 지역으로 함께 이주하는 거다.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귀농·귀촌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김포시에서 전라도 강진군으로 귀농한 김순임(38)씨도 동생과 함께였다. 김씨는 “농사일에 대한 두려움만큼 현지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며 “아는 사람과 함께 내려가면 힘들 때 서로 도와가며 의지할 수 있어 훨씬 안정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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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정도 주말 이용해 현지 답사”

성공적으로 시골에 정착하려면 사전에 철저한 준비는 기본이다. 시도별로 세제 지원 혜택, 농지 가격 등이 천차만별이라 발품을 팔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농촌경제연구원과 농촌진흥청이 귀농·귀촌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년 이상 준비한 사람이 35.5%로 전체 3분의 1을 차지했다. 3년 이상 준비한 사람도 21.4%나 됐다. 김덕만 귀농·귀촌종합센터장은 “요즘에는 인터넷 등에도 워낙 다양한 정보가 나와 있고, 각 시·도·군에서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강의를 열고 있다”며 “지역, 작목 선정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꼼꼼한 계획이 실패를 줄인다”고 말했다.

막연히 잘될 거라는 기대로 도시를 떠났다가 상처만 안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농촌경제연구원·농촌진흥청 조사 결과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귀농·귀촌을 스스로 평가했을 때 성공적이냐”는 질문에 대해 최근 3년 내 이주자 540명 중 60.4%가 “아직 모르겠다”고 했고, 2008년 전에 이주한 사람 210명 중에도 30.1%가 같은 답을 내놨다. 경제적 이유, 가족 간 불화, 지역 주민과의 갈등 등이 원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이유다. 2013년 전라도 강진군으로 이주한 이두희(54)씨는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초반에는 큰돈 벌 생각하지 말고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농지를 넓혀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또 가족이 함께 내려가기로 결정했을 때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 내야 한다. 가장이 혼자 독단적으로 정하거나 귀농에 대해 좋은 면만 알려주면 이주 후 부부간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씨는 “억지로 설득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부부가 한 1년 정도 주말을 이용해 현지답사를 떠나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현지인들과의 갈등 해결도 중요한 문제다. ‘귀농에 성공했다’는 건 큰돈을 버는 것 외에도 자신이 속한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생활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역귀농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마을 사람들과의 불화’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 73.6%의 사람들이 마을 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귀농·귀촌인에 대한 선입견과 텃세 때문이 33.9%, 집이나 땅 문제 등의 재산권 침해가 24.3%, 농촌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15.4%였다.

선배 귀농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농촌에서의 삶을 휴양지에 여행간 것처럼 쉽게 봐서는 안 된다는 거다. 김씨는 “지역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선글라스 낀 채 강아지나 산책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정보 얻으려고 마을 분들에게 먼저 다가가면 도시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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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어린 자녀 있는 젊은 부부

"예체능 무상 교육 등
교육환경 나쁘지 않아"

○ 박중애(40·충북 괴산)씨
○ 귀농 전 거주지: 경기도 의정부
○ 초기 정착비: 처음 1년간 없음(집은 무상 임대, 농지는 후불)
○ 작목: 감자, 옥수수, 절인 배추, 아로니아

젊은 부부들이 귀농·귀촌을 결심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자녀 교육입니다. 이는 부모의 교육 철학과도 관련이 있을 거고요. 서울 대치동에서 여러 개의 학원을 보내며 국제중·특목고에 진학시키려고 고군분투하는 학부모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아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곳의 교육환경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훌륭합니다. 초 2인 첫째 아이가 다니는 명덕초는 올해 혁신학교에 선정돼 명문고에서 실시하는 1인 1예·1체를 실시합니다. 학년별로 오카리나·우쿨렐레·기타·양궁·골프 등을 의무적으로 배웁니다. 서울에서는 이 정도 교육을 시키려면 적어도 50만원 정도 들 텐데 이곳에서는 모든 게 무상입니다.

 자녀 교육 외에 장점은 또 있습니다. 도시에서 전업주부였던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긴 거죠. 현재 남편의 농사일을 돕는 거 외에도 초등 방과후 학교에서 공예·미술을 가르칩니다. 패션핸드페인팅·북아트·아동미술 등의 자격증이 빛을 발한 셈이죠.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는 것도 좋지만 재능을 개발해 문화혜택이 부족한 시골에 기여하는 것도 보람됩니다. 지난해에는 이런 부수입이 2000만원 정도였습니다.

 귀농 후 가장 만족스러운 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겁니다.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습니다. 농기계 할부금, 인건비, 종자 값 등에 투자하다 보면 수확해도 남는 게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 함께 잠이 듭니다. 도시에서 직장 다닐 때 남편은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주말에서야 아이들 마주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끝이 이곳에 있습니다.

[귀농]
은퇴 후 아내는 학업, 남편은 농사

연 매출 1700만원선
빠듯하지만 지출도 적어요

○ 이두희(54·전남 강진)씨
○ 귀농 전 거주지: 서울시 양천구
○ 초기 정착비: 1500만~1700만원
○ 작목: 울금, 미니 밤호박, 돼지감자

자동차 100km로 달릴 때 주변 풍경이 잘 보이나요.

서울에서 제 삶이 그랬습니다. 하늘의 구름이 얼마나 멋있는지, 산이 얼마나 푸른지 알 수 없었죠.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했고, 두 아이를 바르게 길렀지만 마음 속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저지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2012년 여행으로 내려간 전남 강진에서 396㎡(120평)짜리 집을 700만원 주고 구매했습니다. 요즘엔 또 그사이 가격이 올라서 1500만~2000만원은 줘야 하지만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라 1000만원 정도 주고 수리도 했고요. 서울 비싼 동네에서는 땅 한 평도 못 살 돈으로 근사한 나만의 저택을 지은 거죠.

 강진을 고른 건 산과 바다, 들이 모두 있는 자연풍경이 마음에 들어서입니다. 아내는 귀농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농사일은 못하겠다더군요. 현재 아내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춘천대 사회복지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귀농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인생 2막이 된 겁니다.

 농사짓는 것도 할 만합니다. 6611㎡(2000평) 정도 땅을 임대해 울금과 미니 밤호박, 돼지감자 등을 키우고 있습니다. 평당 1년에 600~1500원입니다. 3305㎡(1000평)이면 1년 동안 60만~150만원만 내면 됩니다. 서울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끼 먹을 돈이면 땅 3305㎡가 1년간 제 것이 되는 겁니다.

 들어가는 돈이 거의 없지만 나오는 것도 적습니다. 연 매출 다 합쳐 1500만~1700만원입니다. 서울에서 살기엔 빠듯한 금액이지만 이곳에선 살 만합니다. 쌀값·기름값·통신비 등 한 달에 15만~20만원 정도 듭니다. 반찬이 없을 때는 산에서 고사리나 취나물 캐다 먹으면 됩니다. 문을 열면 마주하는 자연풍경과 마음의 여유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요.

[귀농]
‘도4농3’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장

도시서 4일, 농촌서 3일
농업인 되면 세제 혜택

○ 김덕만(54·경기도 하남) 귀농귀촌종합센터장
○ 귀농 전 거주지: 서울시 강동구
○ 초기 정착비: 집 보증금 1억2000만원(월세 30만원)
○ 작목: 더덕·당귀·완두콩 등

‘도시에서 4일, 농촌에서 3일’.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할 수도 있고, 저처럼 서울 근교에 집을 얻어서 생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7년 전 도시 근교에서 농사짓고 싶어서 하남시에 집을 샀습니다. 어렸을 때 농사지었던 경험이 도시 생활하는 중에도 계속 뇌리에 남더군요. 1970년대 중반, 중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농사를 지었습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감자·옥수수·콩·팥 등을 심어서 재배했죠. 지금이야 농촌도 기계를 이용해 자동화가 많이 됐지만 그때까지는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농민교육만 20가지 넘게 받았습니다. 내 손으로 키운 농작물이 자라는 걸 지켜보는 일은 도시에 나와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성취감과는 또 다릅니다. 2011년대 중반에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 내려가 귀농·귀촌협의회를 구성하고 지역 농산물 팔기 운동 등을 한 이유도 어린 시절 향수 때문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도4농3’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민등록상의 주소지를 이전해 991㎡(300평)의 농지에 농사를 지으면 농업인의 자격을 취득해 다양한 세제 혜택을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주택융자금도 받을 수 있고, 비료·농자재 등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도 지원 정책이 제각각이니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주중에는 서울로 출근하고, 주말에는 더덕·당귀·완두콩 등 재배합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땀 흘려 일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고 머릿속이 맑아집니다. 이런 모습을 사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사람들이 다 부러워합니다. 도시와 시골,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니 말입니다.

[귀어]
1996년 1세대 귀어인

무작정 열심히 마세요
선택과 집중이 살 길

○ 이동형(52·경남 남해)씨
○ 귀농전 거주지: 경기도 안산
○ 초기 정착비: 처음 1년간 거의 없음
○ 특징: 연안자망어업권 취득

요즘에야 귀농이나 귀어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제가 도시에서 회사 생활을 접고 경남 남해에 자리 잡을 때만 해도 그런 단어가 없었습니다. 제가 1세대 귀어인인 셈이죠.

 서울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회사 생활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10년간의 회사생활을 접고 1년간 실업자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삼 남매의 생계를 이어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고기 잡는 일이나 해볼까 하고 평소 동경하던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저의 귀어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반대도 저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초반에는 정치망 어선에 취업해 한 달에 100만~120만원 월급을 받으면서 월세 5만원 집에 살았습니다. 1년 후 600만~700만원을 모았고, 이 돈으로 연안자망어업권(1척의 무동력,동력 어선으로 흘림걸그물 등을 사용해 수산동물을 포획하는 어업)이 있는 1.7t짜리 목선을 장만했습니다. 당시에 200만원 정도였던 연안자망어업권은 현재 1800만원 정도로 값이 뛰었습니다. 이외에 연안복합어업권, 연안통발어업권 등도 도전해볼만한 어업입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 10시간씩 낙지·도다리·물메기 등 닥치는 대로 잡았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았습니다. 전환점은 어업을 시작한지 4~5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계절별로 물메기·게·서대·조기같이 구체적인 어종과 어구를 정해 바다로 뛰어든 거죠. 그해 3000만원 소득을 올렸고, 요즘도 연 3500만~4000만원 정도 수익을 냅니다. 해답은 선택과 집중에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은 귀어 학교를 운영하면서 귀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바다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저의 꿈입니다.

[귀촌]
준비 7년 만에 첫 삽

이웃사촌 17가구
공동주택 지어 귀촌해요

○ 박흥섭(54·마포구 성산동)성미산마을 귀촌운영위원장
○ 귀농 예정지: 강원도 평창 꽃숲마을
○ 초기 정착비: 가구당 3000만원
○ 특징: 2017년 17가구 순차적으로 귀촌 예정

5월17일에 강원도 평창 ‘꽃숲마을’에서 착공식이 열립니다. 4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공동주택과 13가구를 위한 단독주택을 짓는 첫 삽을 뜨는 겁니다. 2007년 3.3㎡(1평)당 4만원 하던 임야부지 3만4380㎡(1만400평)을 매입해 토목공사만 3년을 했습니다. 집을 지을 준비 기간만 7년이 걸린 셈입니다.

 1994년 성미산마을 공동육아에서 시작된 인연이 단체 귀촌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처음 얘기가 나온 건 8년 전입니다. 지금까지 서로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왔으니 언젠가 노후에 다 같이 귀촌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죠.

농경사회에서는 땅과 농사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한 노인이 대접 받았지만 산업사회에서 노인은 할 일도 없고 존경받지도 못하는 존재라 여겨졌습니다. 특히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자녀들에게 노년을 맡기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농촌에서 건강하게 텃밭 가꾸면서 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처음 한 일은 땅을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자녀가 결혼해 서울에서 생활하는 집이 있으니 너무 먼 곳은 배제했습니다. 충북 괴산에 1만9834㎡(6000평) 부지를 알아봤는데 하나로 된 땅을 구하기 어려워 강원도 평창 방림면으로 정했습니다. 17가구 중 4가족은 공동주택에서 생활할 예정입니다. 하나의 거실을 중심으로 독립된 4개의 방이 있는 구조라 따로, 또 같이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이죠.

 2017년 이주를 앞두고 귀촌 후 할 일에 대해 저마다 고민이 많습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귀촌 후 생활에 대해 꾸준한 논의와 교육을 진행 중입니다. 틈틈이 다른 마을 답사도 다니고 있고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여생을 공기 좋은 곳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귀촌]
젊은 문화예술 귀촌

문화장터 열고
게스트하우스로 수익

○ 김주영(43·전북 완주) 씨앗(C.art)문화예술협동조합 대표
○ 귀촌 전 거주지: 서울시 노원구
○ 초기 정착비: 처음 1년간 거의 없음
○ 특징: 삼삼오오 게스트하우스, 문화장터 운영

지난해 초에 내려올 때는 막막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의 속도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귀촌을 결심했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러던 중 삼례문화예술체험 숙박촌을 알게 됐습니다. 방이 6개 있고, 17~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좋은 공간인데 시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광객이나 지역주민들을 참여시켜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문화장터’를 해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맹꽁이 공방, 고양이 식당’문화장터는 지난 3월 초부터 매주 토요일 낮 12~5시에 열립니다. 키워드는 농부·요리사·예술가입니다. 농부팀은 지역 재료를 이용한 잼과 차 등의 1차 가공품을 판매하고, 요리팀은 완주에서 나는 농수산물로 만든 세계 요리를 선보입니다. 프랑스의 타르트, 멕시코의 타코 같은 메뉴입니다. 예술가팀은 체험활동을 하거나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팝니다.

 청년 귀촌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귀농·귀촌하고 싶어도 실제로 시골에 인맥도 없고, 정보를 얻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일이죠.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번에 걸쳐 각각 1박2일간 열린 청년귀촌캠프엔 20명 내외의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앞으로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많이 부족합니다. 게스트하우스 수익금은 물론, 문화장터 참가자들에게 받는 판매 수익의 10%도 대부분 운영비로 들어갑니다.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 받았던 돈의 5분의 1정도밖에 안 남죠. 하지만 한 번도 이곳에서의 삶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대신 마음이 공허한 반면 이곳에서 생활은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요소가 많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사람들과의 어울림 등 말입니다.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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