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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론 꺼냈다 번번이 초상집 된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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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1. 솔직히 이번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선거 때 야당이 개표 직전까지 ‘심판론’으로 한껏 기세를 올렸다가 뚜껑이 열린 다음 초상집으로 변하는 건 이제 익숙한 장면이다. 2012년 총선·대선이 그랬고, 지난해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도 그랬다. 이번 4·29 재·보선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초반에 ‘유능한 경제정당론’을 들고 나왔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진 후 ‘부패 정권 심판론’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야당은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진다. 극성스러운 소수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다가 조용한 다수의 민의에 뒤통수를 맞는다. 심판론은 자기 고정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그만큼 반대 진영을 긴장시켜 결집시키는 반작용도 있다. 심판론이 안 통하는 건 과연 야당 자신은 남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국민이 더 많다는 의미다. 안 통하는 전술을 계속 고집하는 건 무능한 감독이다. 심판보단 대안 제시가 중요하다.

 2. 박근혜 대통령은 3김 이후에 누구보다 선거의 속성을 잘 꿰뚫고 있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국가 기밀 사항인데 지난달 27일 중남미 순방 후 청와대가 대통령의 컨디션이 나쁘다는 걸 언론에 흘리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물론 실제로 대통령의 상태는 안 좋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굳이 그 사실을 공개한 건 대통령 고정 지지층을 자극해 재·보선 투표장으로 끌어내려는 고도의 정치 행위로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특히 선거 전날 박 대통령이 홍보수석을 통해 내놓은 ‘성완종 특별사면 비판’ 메시지는 이대로 야당에 정국 주도권을 빼앗겨서야 되겠느냐는, 보수층을 겨냥한 투표 참여 호소문처럼 들렸다. 인천 서-강화을 선거에서 야당이 우세한 서구의 투표율은 29.3%였지만, 보수 정서가 강한 강화군의 투표율이 50.3%나 됐던 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3.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은 확실히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 야당이 공천 자중지란으로 자멸한 데 반해 새누리당은 지난해 7·30 재·보선에 이어 이번에도 공천에서 별 잡음이 없었다. 김 대표가 자기 사람을 꽂기보단 일관되게 지역 경선을 추진한 결과다. 그가 참신한 얼굴을 찾는 데 소극적이란 비판도 있지만 어쨌거나 공천은 선거 결과로 평가받는다. 공천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한 김 대표의 공은 평가할 만하다. 이른 얘기지만 김 대표가 지금 같은 공천 방식으로 내년 총선에서도 호성적을 거둔다면 차기 대선 판도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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