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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위해 모였다 … 내로라하는 연주자 3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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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외국엔 프로젝트별 연합 오케스트라가 많다. 지역별 악단이 다수인 국내에서도 그 같은 연합 형식이 선보인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만든 김용배(피아노)·박경옥(첼로)·이택주(지휘)·김영률(호른·왼쪽부터)씨가 피아노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줄을 상상해 본다.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을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서울시향의 전·현직 수석 연주자들이 맡았다. 뒷줄 호른은 서울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번갈아 수석 자리에 앉는다.

 외국에 선보이려고 구성한 한국 대표 교향악단이 아니다. 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를 위해 모인 오케스트라다. 무대는 피아니스트 김용배(61)의 다음 달 독주회다. 그가 베토벤·그리그·거쉬인의 피아노 협주곡 세 곡을 한 무대에서 연주하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지난해 초. 소식을 들은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하나둘 나섰다. 국내 중견 연주자들의 연합군이 이뤄졌다.

 ◆음악 동지들의 집합=‘백의종군’에 나선 연주자는 총 30여 명. 오케스트라 연주자뿐 아니라 독주자, 실내악 팀 멤버, 음대 교수까지 다양하다. 공통점은 하나다. 김용배와 오랜 시간 음악을 함께했다는 점이다. 길게는 40년, 짧아도 10년이다. 지휘를 맡은 이택주(64·이화여대 교수)와 김용배는 1968년 처음 만났다. 5·16 군사정변을 기념한 콩쿠르였다. 김용배는 고2 학생이던 이택주가 바이올린으로 전체 대상을 받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둘은 “지금은 역사 속 이야기가 됐지만 당시엔 가장 크고 중요한 콩쿠르였다”고 기억했다.

 이처럼 오케스트라 안에는 한국 음악계의 오랜 시간이 녹아있다. 김용배는 미국 유학 후 1985년 귀국했다. 이후 독주는 물론 다른 연주자와 함께하는 무대에 공을 들였다. “한 달 5~6번씩 반주자로 섰을 정도”라고 했다. 86년엔 ‘예음 클럽’을 만들어 본격적 실내악 활동을 했다. 음악 동지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의 인간적 교류 중요”=김용배는 음대가 아닌 서울대 인문대 출신이다. 미학과를 나온 후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러나 다양한 활동·시도로 음악계의 중요한 인물이 됐다. 무엇보다 2004~2007년 예술의전당 사장을 지냈다. 연주자로 처음이었다. 오전 11시에 여는 아침 콘서트와 해설 음악회, 젊은 연주자 오디션 제도 등을 도입했다.

 이 과정을 함께 한 연주자들도 그의 음악 동료가 됐다. 그가 기획한 무대에 섰거나 음악계의 고민을 함께 나눴던 사람들이다.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첼리스트 박경옥(57·콰르텟21)은 “피아니스트가 기획·행정까지 담당했던 독특한 경력 때문에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며 “이 정도의 연주자들이 한 오케스트라를 이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호른 연주를 맡은 김영률(58) 서울대 교수는 “연주자끼리 인간적 교류가 있어야 연주도 잘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며 “김용배 전 사장은 무대뿐 아니라 여러 위치에서 연주자들과 인간적 교류를 하고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김용배는 특히 음악계 선배로서 사명감이 크다. 요즘도 연주회 전단지만 보고 공연장을 찾는다. 낯선 이름의 연주자들 무대다. 보석 같은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발탁해 무대 기회를 주는 적도 많았다. 그는 “실력있는 새로운 연주자는 많고 등용문은 부족하다”며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신념 또한 음악계 내 신망을 두텁게 하고 있다. 김용배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협주곡 공연은 다음 달 17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용배=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미학과 재학 중 국립교향악단 협연으로 데뷔. 서울대 음대 대학원,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 가톨릭대 졸업. 89년 쇼팽 피아노 소나타 1번, 95년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3번 국내 초연. 2004~2007년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 현재 추계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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