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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집값잡기 보유세만으론 역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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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부동산 투기의 역사는 196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시작됐다. 67년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도입을 시작으로 역대 정부가 주로 부동산 거래에 따른 세금 징수를 강화하는 쪽으로 조치를 취해왔지만 부동산 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DJ 정부 말기인 2001년 말 부동산 시장에 댕겨진 불이 꺼지지 않고 올 3월부터 더욱 거세지자 참여정부는 거래세는 물론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등 부동산 보유세도 강화하는 양수겸장 작전에 들어갔다.

빈부격차 해소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보유세 과세표준(과표ㆍ세금을 매기는 기준) 조정에는 적어도 몇 년이 걸리는 데다 효과도 불확실해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과세 기능 떨어진 보유세=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는 최근 1년 사이 몇천만원씩, 많게는 1억원도 넘게 올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강북 지역의 아파트 시세는 별 변동이 없었다. 그럼에도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거의 비슷하다. 재산세 과표가 면적과 건축연수 등에 좌우되며 시세 변화를 좇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과표는 시가의 30% 정도라서 집값이 비싼 지역의 주택 소유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김재진 청와대 빈부격차.차별 시정 기획단 소득파악팀장)

더구나 보유세는 건물과 토지로 나눠 1년에 한 차례만 내기 때문에 시세차익을 남기며 몇달 만에 팔면 부담이 전혀 없는 경우도 생긴다.

"부(富)의 재분배라는 조세의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보유세는 이미 상당 부분 그 기능을 상실했다. 보유세를 제대로 매겨야 집값을 근본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보유세 강화로 시장 잡힐까?=참여정부는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5만~10만명을 대상으로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를 지금의 두세배로 높이면 투기 억제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과다 보유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요즘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세금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야 할 세금이 있다면 내면서 시세차익을 보겠다고 생각한다."(서울 도곡동 L공인중개사)

현실적으로 재건축 등 일부 지역 아파트를 사두면 은행 대출금에 대한 이자는 물론 취득세.등록세와 재산세ㆍ양도소득세 등 매매에 따른 비용을 빼고도 이익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게다가 과표 조정이 정부 계획대로 추진돼도 현재 시가의 30% 수준인 과표를 50%로 높이는 데 5년이 걸리므로 보유세 강화가 단기적인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으론 적합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실물경기와 소비가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주식시장 여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시중 자금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오석태 씨티은행 연구원)

일률적으로 과표를 조정할 경우 집값 오름폭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지역의 재산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는 부작용도 지적된다.

◇거래의 투명성 높이는 것이 관건=부동산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면역성을 키운 것은 기본적으로 거래 과정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해 투명한 금융거래가 필수적이듯 부동산 거래도 실거래가를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선결 과제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모든 부동산의 등기부등본과 같은 공적기록에도 실거래 가격과 납세 보를 명시하자는 것이다."(김재진 팀장)

정부는 보유세 과표 조정 권한을 시.군.구에서 중앙정부로 옮겨 과세의 형평성을 높일 방침이다.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반발할 수 있고, 보유세 부담을 늘려도 실거래가격이 드러나지 않으면 여전히 정확한 과표 산정이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보유세 현실화는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의 첫걸음이다. 중앙정부에서 보유세 과표를 일관된 기준에 따라 조정하고 부동산 거래 자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투기 억제 대책의 기본이다."(최명근 강남대 교수)

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

*** 미국에서는…

정부서 개인 주택정보 인터넷 공개

미국 사람들도 부동산에 투자하며, 대도시 번화가는 값이 비싸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행위를 찾아보긴 힘들다. 한국보다 땅이 넓어서가 아니라 거래 과정이 투명해 투기세력이 끼어들 소지가 적기 때문이다.

모든 카운티(시와 주 정부 사이 행정단위) 는 부동산 관련 정보를 공개한다. 부동산 열람 시스템(MLS)에 따라 토지와 건물의 취득부터 매도 단계까지 거래 당사자의 이름과 거래금액은 물론 세율과 세금을 3년에 걸쳐 공개한다. 주소만 입력하면 누구든지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다.

또 거래 내용 입증 제도에 따라 거래금액을 비롯한 모든 부동산 매매 정보가 변호사를 통해 공인(公認)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실거래 가격이 기록되므로 세금도 실제 가격에 맞춰 예외없이 부과된다.

이처럼 부동산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부동산 가격을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부동산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격이 시세와 동떨어지게 형성되는 것을 막고 세금을 제대로 냄은 물론 교육보조금을 공정하게 지급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선 부동산 관련 세금의 80% 정도가 재산세에서 나와 교육보조금을 통해 다시 시.군의 재정으로 돌아오므로 엄격한 부동산 평가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재산세에 많은 세금을 물림으로써 투기 목적의 부동산 보유를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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