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성 고모루성을 찾아냈다|광개토대왕비·중원 고구려비에 비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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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설의 성 고모루성을 찾아냈다. 그동안 신비에 싸였던 고모루성이 위치한 곳은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고모리 고모산 정상부를 에워싼 해발 3백80m지점. 포천읍으로부터 남쪽으로 약12㎞ 떨어진 곳이다.
성의 위치는 국사편찬위원회 최근영·민덕식씨(교육연구관)에 의해 밝혀졌다. 지난1년간철원·포천·연천·파주일대를 30여차례 답사한 끌에 찾아냈다.
고모루성이 한강∼임진강 사이에 위치하리라는 것은 그간 학계의 유력한 추정이었다.
성내에서 수습된 다수의 토기조각은 백제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중엔 특히 백제초기(철기시대)에 속하는 토기조각들도 다수 발견돼, 이 성을 처음 쌓은 것은 백제초기로 보인다.
성은 개축된 흔적을 엿볼 수 있으나 대부분 붕괴됐으며 성내에서 장대지·정지·성지 등이 드러났다.
「모루」란 지명은 지금도 이 일대에 많이 산재해 있다. 따라서「고모루」란 큰 마을을 뜻하는 백제초기의 지명으로 보인다. 이 성은 마을주민들에 의해「고모리성」으로 구전돼 왔다.
이 성은 둘레가 8백22m나 되는, 당시로선 매우 큰 토·석성이다.
고모루성이 그동안 학계를 한껏 궁금하게 한 것은 바로 그 명칭이 오직 광개토대왕비와 중원 고구려비에만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신증 동국여지승람』등 고문헌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비에선 이 성에서 다수의 수묘인을 뽑았다는 기사가 있어 이 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나 중원 고구려비의「고모루성수사」에선 어째서 멀리 떨어진 충주의 이 비문에 고모루성의 수사(군수급 관리)가 등장하는지 더욱 궁금한 형편이다.
백제인이 쌓은 고모루성은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략했을 때(396년) 한강유역까지 진출한 고구려가 함락시킨 여러 성중의 하나로 학계는 보고 있으나 그 위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이병도박사는『광개토대왕때의 대백제 정복의 범위로 보아 오늘의 경기도지방과 강원도일부의 테두리 안에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으며, 천관우씨는『임진강과 한강하류 일대』 로 보았다. 일본인 정상수웅은 충남 덕산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조사자들은 고모루성이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를 막는 최후의 방어기지였다고 주장했다.
또 고구려 역시 고모루성을 함락시킨다면 거침없이 한성까지 쳐내려올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 이 성을 남하정책의 전진기지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모산과 전면(동쪽)의 죽엽산(해발 6백1m)사이를 가로지르는 구도는 광릉내∼퇴계원∼아차산성(현재 워커힐뒤편)으로 통하는 지름길(약30㎞)이며 북으로 12㎞지점에는 포천군에서 가장 큰 반월성이 자리잡고 있다.
조사자들은 포천일대엔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로서 크고 작은 성들이 산재해 있다고 지적하고 하루빨리 이들을 사적지로 지정, 보호대책을 새워야한다고 주장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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