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윤보선·변영태 모두 부적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정구영은 재야정파의 간곡한 권유를 끝내 뿌리치고 공화당을 선택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얼마간 미흡했다. 군정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엇갈림이 더욱 그렇다. 그는 윤보선씨도 그해 1월1일일의 면담이래 두차례 더 만나 간곡한 부탁을 했다고 했다. 끝내 이를 뿌리친 그의 마음은 이렇게 정리된다.
『우리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군사혁명이란 잘못된 것이었다. 윤보선씨는 그때 대통령으로서 혁명을 승인하고 지지했다. 내가 아무리 그와 친하다해도 그를 내세워 일한다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와는 개인적으로는 친하다. 윤보선에게는 백부가되는 윤일선의 어르신인 윤치오씨라고 있어. 대한제국 말년에 학부국장으로 있던 분으로 우리나라 개화에 첨단을 걷던 분이야.

<한민당뒤 관계 소원>
그런 어르신네께 소년시절엔 세배도 다니고…. 윤보선도 해방전까지는 놀러도 오고 나도 안국동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해방 후에 그사람이 한민당조직에 참가하면서 멀어졌지. 한민당에 가입한다는 것은 나의 방침과는 어긋났거든. 어쨌든 오랜 교분이 있긴 하지만 야당연합에 윤보선을 내세운다는 것은 마땅치가 않았어』
정구영은 변영태를 야당연합의 구심점으로 하자는 이상철의 제안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인격적으로 봐서 변영태군 같으면 좋기는 한데. 그사람이 휴전 직후의 제네바회의때 유엔의 통한원칙과는 다소 어긋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말썽이 난 일이 있었지. 남북을 통한 총선거, 즉 대한민국헌법하의 의회를 해산하고 남북의 동시총선거를 해야한다는 인상을 주는 듯한 발언을 한적이 있어.
그때 일본 신문들이 한국외무장관이 이승만대통령의 훈령을 기다리지 않고 그런 발언을 했다는 보도를 해서 나도 읽은 기억이 나.
그러나 어쨌든 변군은 진지하게 또 양심적으로 남북문제를 고려한 한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내가 높이 평가해.
그는 평생을 건전한 학자로 지낸 사람이야. 청년시대부터 근면하고 손수 노동을 하고…. 중앙중학교 교사로 재직할때 부평에서 자전거로 서울까지 통근을 했고 하오5시에 퇴근을 해서는 부평에가서 15마지기 농사를 자기손으로 지은 사람이야. 그때 일제말기에 쌀이 퍽 어려울 때인데 쌀 2말을 자전거에 싣고 내집에 와서「이거 받게. 내가 손수 지은 걸세」. 나는 감격해서 그 쌀을 받았어. 솔직한 인간성의 소유자고 허영 같은것 전연 없었어. 그사람이 한국 유교에 있어서의 제사론을 영문으로 저작을 했었지.
그사람은 기독교신자인데 제사란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상숭배와는 전연 다른 것이다라는 취지를 본론으로 해서「조상숭배에 대한 나의 태도」라는 단행본을 미국에서 출판했어. 그래서 미국의 한 여기자가 도오꾜에 들른 길에 서울까지 찾아와 변군에게 회견을 청한 일이 있어.
그는 영국이나 미국에 간 일이 없는데 여기서 배운 영어실력으로 그런 저술을 했다는데 감탄한 거지. 그렇지만 나는 그를 큰 정치인이라고는 생각지 안해. 다만 인간적으로는 존경하고 신뢰해. 한국에 요청되는 사람은 진실한 인간 대통령이야. 요새정치가라면 권모술수 잘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권모술수 하는 유능한 사람보다는 진실한 사람이 필요하다는게 나의 소신이야. 그렇지만 그때 나로선 변군이 민정의 대통령 적임자라고는 생각지 않았어.

<파문대결 격심 예상>
그무렵 정구영은 군정주체가 새로운 파워그룹으로 등장해 있고 재야정치인이 그에 맞설 채비를 갖추고 있는 63년의 정치기류를 상당기간의 혼란이 불가피하리라고 보았다. 그가 재야정가에 몸담기를 꺼린 것은 그런 혼란에 대처할 재야정파의 비전이나 정치역량에 신뢰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얘기는 이렇게 요약된다.
『우리들 정당은 붕당으로 전락할 폐단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물론 정당이라는 것이 권력분배를 위한 집단이다. 그런 정의를 내린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파벌대결이 격심할 듯 했다. 그래서 변영태·윤보선 두사람을 협동케 하는 일에 나서달라는 이상철군에게 이렇게 말했어.
변영태군 대단히 좋다. 좋지만 윤보선이 변군을 믿고 양보할 것 같지 않고 구파들이 신파가 미는 변군을 지지해 줄 것 같지 않아. 민주당 신파는 신파대로 윤보선을 배격하고 있어.5·16을 지지했다는 것, 기성정치인을 묶어놓는 정치정화법에 대통령으로서 서명했다는 것, 이런것 때문에…. 내가 나서서 윤보선뿐이다 해도 될 것 같지 않아. 그럴때는 내가 무력해. 내가 그대 권유에 따르면 나를 신파로 볼거고 내가 윤보선의 요청에 따르면 그대들이나를 윤보선의 괴뢰라고 지칭할거야.
나는 이같은 현실에서 그대들이 청하는 신당을 만드는데 있어 내가 무력할 뿐 아니라 여러가지 우려되는 사태에 대한 대응책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적에 실로 한심해.
난 이군에게 그렇게 얘기했어. 5∼6차례 그런 얘기가 오갔어.

<통일문제 꼭 다뤄야>
내가 그때 이상철에게 얘기는 안했지만 내 나름으로 한가지 더 생각한 것은 앞으로의 이나라 정치라는 것은 남북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정치가 아니면 안된다는 거였는데 구민주당 사람들 개인적으로는 친한 사람도 많지만 통일문제를 민족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다룰 사람은 적다고 보았어』
민주당 계열 안에는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사람이 적다는 그의 평가는 8·15후 정구영과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한민당에 대한 일반적 불신을 담고있다.
어떻든 재야 합류를 거부한 그가 군정주체의 설득엔 끝내 굴복했다. 그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