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비망록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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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6년 겨울은 박대통령에게나 공화당에 있어 어느 때 보다도 평온하고 밝은 내일이 내다보이던 낙관의 시기였다. 지난 3년 끊이지 않던 정치격동은 가라앉아 있었다. 67년이면 치러야할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의 무난한 승리가 내다보이고 있었다.
그 무렵 박대통령은 정치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듯 했다. 민정수립직후부터 밀어닥치던 거친 도전들을 그는 극복해냈다.
집권세력내부의 권력투쟁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한일회담과 월남파병에서 전면전으로 부닥쳐오던 야당을 잠재우는 데도 성공했다. 박대통령은 여당뿐 아니라 야당까지도 어느 정도까지는 뜻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그 같은 힘의 기반을 갖추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사실 한일회담을 매국외교로 몰아친 열기 속에서 통합을 실현했던 야당은 곧바로 반대투쟁의 방법을 놓고 분열했다. 야당을 대표하던 박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 윤보선씨는 스스로가 일으킨 세칭 진산파동으로 상처투성이였다. 그 위에 야당주류를 박순천·유진산씨가 이끄는 민중당지도부에 뺏기고 원외야당인 신한당의 당수로 주저앉아있었다.
민중당은 윤씨의 신한당을 일컬어 무정견한 야당이라 했고 신한당은 민중당을 일컬어 사꾸라 정당이라고 헐뜯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야당의 노선 수정이었다. 제1야당인 민중당지도부는 한일국교정상화를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청부전쟁이라고 몰아쳤던 월남파병에 대해서도 박순천 대표는 『한사람이라도 더 월남에 보내서 한국의 얼을 심어야한다』는 어이없는 굴절의 소리를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집권3년의 중요쟁점에서 야당의 반대의 함성은 부질없는 짓들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형세였다. 그러니 67년 선거에서 박대통령이 재선되리라는 데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그런 시기였다.
낙관이 충만하던 그 무렵 청와대를 공화당 원로 정구영씨가 찾았다. 박대통령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당의장자리를 물러 나온 뒤 실로 오랜만의 청와대 방문이었다. 정씨의 걸음은 박대통령에게 아주 요긴한 건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정구영씨의 회고의 얘기로 옮아가자.
66년 겨울에 이르니까 정계에서는 그 이듬해 67년 선거에 박대통령의 재출마가 확정적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나도 박대통령은 재선까지는 해야 옳다는 견해를 가졌었다.
그분이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은 당연한데 출마하는데 있어서는 3기 대통령은 어떻게 하느냐. 여기에 대한 그분의 확고한 결의가 없이는 정치가 혼란해진다 하는 것을 나는 걱정했다. 여러가지로 생각한 끝에 66년11월28일 하오4시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을 만나 긴 시간동안 그 점에 관해서 논의했다. 물론 그것만 얘기한다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국내외 정세발전과 그에 따른 안보·통일문제에 대한 기탄없는 의견교환을 갖고 싶었다.나는 통일문제에 대해 나대로의 견해를 밝혔고 대통령도 기본적으로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런 얘기 끝에 내년 선거얘기로 옮아갔다.
-각하, 내년 5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는데 각하 임기는 내년 6월30일로 만기가 되고 7월1일부터는 다른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는데 재출마해야 되지않습니까.
-글쎄요, 하면 될까요.
-무난한 걸로 봅니다. 한비사건으로 다소 이미지가 흐려진 점은 있다 하더라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저 정도로 성황을 이루어서 성공을 했고, 또 대통령으로서의 이런 말 저런 말 다소의 말씀을 듣고 계십니다만 업적이 대단히 놀라운 것으로 되어 있어서 웬만하면 이번은 큰 고전않고 제2기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아!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요… 그런데 제가 여기 들어온 것은 각하께 여쭐 말씀이 있어서 들어왔습니다.
-무엇입니까. 말씀하시지요.
-각하, 2기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하는 건 웬만하면 됩니다만 2기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로 이 나라 정치률 어떻게 하실까 하는 점에 대해서 깊은 결의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1기 대통령 당시보다 민주주의로 나가셔야 합니다.
첫째는 제가『도꾸가와·이에야스(덕천가강) 』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전에 「도꾸가와」에 대해 얘기한 일도 있습니다만 그때도 말했듯이 「도꾸가와」막부정치 3백년을 열었던 「이에야스」도 초기 천하률 얻을 적에는 무력으로 무단정치를 했습니다.
그랬지만 동경으로 천도한 뒤의 「도꾸가와」 정치는 요새 말로 하면 여론을 존중하는 면으로 많이 기울어져 가지고 무단정치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한 뚜렷한 흔적이 나타납니다. 각하도 혁명정부의 뒤를 이어서 초기에 대통령을 할 적에는 다소의 무리… 데모의 진압이라든지, 기타 여러가지문제에 있어 강력한 정치를 하신 점, 이것은 오늘날에 와서 각하의 정치를 말할 때 정치를 안정시긴 면도 있지만 다소의 무단정치라는 비난도 듣고 있을 겁니다.
그 점을 교훈 삼아서 민주화라는 면으로 좀 노력해주십시오.

<대통령은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것 말고 또 한가지 더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2기 대통령에 취임하면 잠깐동안에 4년이라는 임기가 지나갑니다. 4년 임기가 지나면 우리나라의 현행 헌법으로 대통령은 두 번밖에 못하게 되어 있어요. 세 번 출마를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다른 사람이 대통령으로 나와야 돼요. 그 점에서 각하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2기 대통령에 출마하십시오. 서두에 말한 것처럼 내년선거는 큰 고전 않고도 당선될 것인데 당선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2기 이후의 이 나라를 생각해야합니다.
71년의 제3기 대통령선거는 첫째조건이 평화적 정권교체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아무것도 안돼요. 또 다시 5·16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요. 혼란이 옵니다. 2기 대통령 재임기간은 평화적 정권교체를 제1의 사명으로 하여 여야 공존 체재를 다져 나가야 합니다. 각하가 제2기 대통령으로서 큰 과오만 없다면 2차5개년 계획이 잘 수행되고 3차 계획도 합리적으로 국민에게 인식될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면 공화당이 또 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공화당 안에서 제3기대통령선거에 각하가 누구를 후계자로 지명하느냐 하는 것을 미리 생각해서 그분하고 2기 대통령선거 이전에 모든 의사의 합치를 봐서 출마하는 것이 온당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문제로서도 2기 대통령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대통령의 발언권이 약해집니다. 임기가 불과 1년밖에 안 남았다고 하면 그 1년은 일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 대비책이 바로 후계자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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