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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고기밥이 된 난민들, 누구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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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난 말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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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지중해 바다 위에서 난민선들이 연달아 뒤집히며 지난주에만 1200명의 난민이 고기밥이 됐다.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를 향하던 시리아와 말리,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국민들이다. 대부분 전쟁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법 이주 브로커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한 사람들이다.

 참사의 규모는 충격적이지만, 새삼스럽지는 않다. 1993년 이후 남유럽 해안에 도달하려다 목숨을 잃은 난민은 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사망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유럽 정부는 불법 브로커를 지목한다. 유럽연합(EU) 장관들은 지난 23일 ‘난민 불법 브로커들을 소탕하기 위한 10대 군사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돈 몇 푼 벌기 위해 거리낌 없이 난민들을 바다에 밀어 넣는 브로커들은 분명 병적 존재다. 그러나 애초에 난민들이 불법 브로커를 찾아간 건 바로 EU 때문이다. EU는 난민의 유럽 유입을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보지 않고 범죄로 간주했다. 난민의 유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국경에 군대를 배치해 난민을 막은 게 EU다. 게다가 난민들의 본국 정부를 압박해 난민들이 본국 국경을 아예 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전술까지 썼다.

 지난 30년간 EU는 육상과 해상·항공 순찰은 물론 인공위성과 무인 항공기까지 동원한 최첨단 감시체제로 북아프리카와 유럽 간 국경을 봉쇄해 왔다. 이에 ‘유럽 요새화(Fortress Europe)’란 비난이 쏟아졌지만 EU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일의 슈피겔지 기자는 EU의 아프리카 국경 통제실에서 “적으로부터 유럽을 지킨다”는 문구를 직접 봤다고 폭로했다.

 그럼에도 난민이 급증하자 유럽은 ‘우리들의 바다(Mare Nostrum)’로 불려온 해양 난민 수색·구조 작전을 중단하고 ‘트리톤(Operation Triton) 작전’을 개시했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트리톤은 난민 구조 대신 감시와 국경 통제라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내세웠다. 그 결과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유럽 진입을 시도한 난민의 수는 지난해에 비해 큰 차이가 없지만, 사망자 수는 18배나 늘어났다.

 EU가 ‘난민과의 전쟁’에서 노리는 타깃은 난민 브로커들만이 아니다. 난민을 구조하는 유럽 시민도 처벌 대상이다. 2004년 독일 선박이 소형 보트를 탄 아프리카 난민 37명을 구조했다. 어렵사리 시칠리아에 도착한 이 독일 선박을 기다리는 이는 경찰이었다. 선장과 1등 항해사는 불법이민 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5년이나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다.

 비슷한 사건은 2007년에도 발생했다. 표류 중인 난민 44명을 구조한 튀니지 어선 2척은 시칠리아 입항을 거절당했다. 불법이민 방조죄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선장은 4년 뒤인 2011년에야 항소 법원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EU가 독일과 튀니지 선박의 승무원들처럼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건 이유가 있다. 현재 EU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돈을 주고 자국민이 국경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국경 통제 아웃소싱’ 전술을 쓰고 있다. 가장 악명 높은 아웃소싱 케이스는 리비아다. EU는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를 향한 공습이 시작되기 1년 전인 2010년, 리비아 보안군을 국경에 배치하는 대가로 3년간 5000만 유로를 지급하겠다는 협약을 카다피와 체결했다. 동시에 카다피 반군과도 비슷한 내용의 협약을 체결해 난민의 이탈을 철통같이 막았다. 여기서 재미를 본 EU는 모로코와도 유사 협약을 맺었고, 이집트·튀니지를 다음 후보로 살펴보고 있다. 유럽 국경을 사실상 북아프리카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난민이 발생하는 원인에는 눈을 감고 무작정 난민선을 막으면 된다는 식의 이 같은 접근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클뿐더러 효과도 없다. 유럽에 들어오려는 난민이 급증한 건 북아프리카 국가 권력들이 붕괴해 무정부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서방의 리비아 내전 개입이 이런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런데 EU는 한술 더 떠 난민선을 무력으로 파괴해 버리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유럽에 들어갈 모든 길이 막힌 난민들은 항해가 불가능한 나무판자에 마구잡이로 올라타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선을 파괴하면 난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EU는 난민을 범죄자로, 국경 경비를 군사작전으로 간주하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유럽의 요새화’ 전략을 중단하고 이민 정책을 자유화해 난민들에게 합법적인 유입 경로를 열어줘야 한다. 유럽의 보수파들은 그럴 경우 이민자들이 홍수처럼 밀려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난민과의 전쟁 역시 난민의 홍수를 막지 못한 채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을 뿐이다.

 ‘유럽의 요새화’는 유럽과 아프리카 간에 물리적 장벽만이 아니라 두 대륙 사람들의 마음에도 흉물스러운 바리케이드를 쳤다. 유럽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지중해는 끝없는 난민의 무덤이 될 것이다.

케난 말리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