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YT의 망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뉴욕타임즈지는 미국지식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최고 권위지 중의 하나다.
객관적인 보도자세와 깊이 있는 심층취재로 인해 「세계의 양심」으로까지 불린다.
이런 뉴욕타임즈지가 지난 5월29일자 사설을 통해 해괴한 논조를 폈다.
88년으로 예정된 서울올림픽의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세 번의 올림픽이 계속 보이코트소동에 휘말려왔고 소련은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88올림픽의 서울개최에는 여전히 위험성이 따르며, 따라서 88서울올림픽은 이미 경기시설이 완성돼 있는 동경이나 몬트리올로 옮기고 92년 이후의 올림픽은 영구적인 장소로 정해놓자는 게 이 신문의 요지였다.
아무리 세계적인 정론지라 하더라도 이쯤되면 그동안 이 신문에 대해 품고있던 존경심은 사라지고 그런 논조를 펴게된 저의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따져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스러운 올림픽이 반쪽대회로 된 결정적인 계기는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카터」행정부가 보이코트 했을 때부터였다.
당시 미국정부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을 규탄하면서 미국자신의 보이코트에 그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수단·방법을 통해 서방각국의 모스크바올림픽 참가를 극력 만류했었다. 일부 국가들은 내심으로는 참가하고 싶었지만 미국의 「압력」이 워낙 거세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로부터 4년. 이제 미국 땅에서 열리는 LA올림픽에 소련이 못 가겠다고 나왔다.
소련은 미국이 소련선수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이유를 내세웠으나 기실은 4년 전에 그들이 당했던 모욕에 대한 보복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초강대국들의 정치게임에 군소국가들이 엉뚱한 피해를 보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서부의 LA타임즈가 88올림픽장소를 옮겨야한다는「쿠마르」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망언을 의도적으로 처음 터뜨렸고 이제 미동부의 뉴욕타임즈지가 그런 주장에 박자를 맞추고 나섰다.
4년전 「카터」대통령이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코트 할 때는 스포츠의 정치오염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던 미국신문들이 엉뚱하게도 88서울올림픽을 속죄양으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의 TV중계협상을 앞둔 미국TV의 중계료를 싼값으로 깎아내려는 음모가 있는것 같기도 하고, 유대인들의 입김에 놀아나는 미국언론으로서는 중동 각국에 진출하고 있는코리언들에게 유감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미국 자신의 실수로 파문이 일게된 올림픽보이코트 풍조의 책임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려는 교활이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어느 경우든 간에 우리는 이번 미국신문들의 보도태도에서 시대착오적인 대국주의와 얄팍한 상업주의를 본다.
한국과 소련이 서로 외교관계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서울개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도 어거지에 불과하다.
작금의 국제적 추세는 정식외교관계의 여부와 상관없이 스포츠교류는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4년 후의 한소 관계는 지금보다 악화될 수도, 개선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장래의 양국관계를 장담할 수는 없다.
일부 일본신문들도 서울대회의 장소이전 가능성 운운하는 얘기만 나오면 흥분해서 침소봉대하고 있다. 서울과 경합했던 나고야 (명고옥) 가 창피를 당한 화풀이는 아닌지 모르겠다.
88대회를 서울로 확정한 바덴바덴에서의 IOC총회결의, 로잔 (스위스) 에서의 IOC집행위원회결의는 무엇 때문에 있었던 절차인가? 분명히 88대회의 개최장소는 한국의 서울이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반납하기 전에는 확고부동한 최종적인 것이다.
미국의 보이코트로 시작된 절름발이 올림픽이 LA서 재현된다고 해서 88대회가 희생돼야 한다는 논리의 비약을 경계한다.
우리는 성심 성의껏 올림픽을 준비하면 되고 각국은 무조건 이 성전에 참가해서 기량을 겨루면 된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88대회를 최선을 다해 치를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자.
어설픈 「강대국 논리」로 세계인의 중대사가 좌지우지돼온 현상은 영원한 과거지사로 돌려도 족하다. 김건진 <외신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