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장보다 무서운 건 ‘부처 사무관’이다. 연구 예산을 받으려면 사무관에게 잘 보여야 한다.” 정부 출연연구소 A위원의 하소연이다. 산업 현장보다 정부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하기 쉽다는 것이다. 공과대학 B교수의 얘기도 비슷하다. “지원금 대상을 평가할 때도 논문 배점이 높아 산학 협력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출연연구소에 5조6000억원을 투자했다. 대학에도 4조5000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매년 이같은 대규모 금액을 지원해도 성과는 크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허·라이센싱·기술지도’ 등의 지출·수입을 집계한 ‘기술무역수지’만 해도 만성적 적자를 기록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다. 밖에서 사오는 기술이 그만큼 많다는 소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6일 이런 악순환의 원인을 놓고 “정부의 공공 연구개발(R&D) 과제가 산업 현장과 괴리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법은 뭘까. 전경련은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를 모범 사례로 꼽았다. 바로 이 곳에서 디지털 음원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MP3 압축기술이 나왔고, 전구를 대체할 수 있는 고성능 LED 부품도 탄생했다. 프라운호퍼의 경우 유럽 각국의 66개 연구소들로 구성된 연합체인데 정부와 상관없이 각 연구소의 대표가 자율적으로 연구 방향을 정한다.
전경련은 “한국처럼 정부 주도로 연구과제를 설정하는 ‘톱 다운’방식은 과거 추격형 산업 구조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국내에선 연구소를 평가할 때 논문·특허출원과 함께 ‘정책 이행도’를 보기 때문에 눈치를 보고 결국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4대강 수질 개선을 위한 ‘로봇 물고기(사진)’만 해도 연구소 4곳이 2010년부터 개발에 나섰으나 이동 속도·거리가 미흡해 결국 57억원 손실을 냈다고 했다. 이와 달리 프라운호퍼처럼 예산의 3분의 1을 민간에서 조달케 하면 산업계와 긴밀한 끈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국내 산업에선 전자(17%)·자동차(12%)·화학(10%) 등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전경련은 “대학에서 수행한 R&D의 경우 보건의료(19%)·생명과학(7%)의 비중이 가장 커서 현장과 괴리가 있다”고 했다. 연구소 평가시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등재 논문에 100점을 줄 때 산학협력 점수는 25점에 그치는 만큼 이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