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동포 56년만에 중공의 형 만나고 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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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경=신성순 특파원】한국적의 재일 동포 김재봉씨 (74·일본자성현하관시 이찬미607)가 아들 김만룡씨(45)와 함께 지난 15일부터 27일 까지 중공을 방문 흑룡강성완화현여화공사에 살고 있는 형 김중재씨(80)를 상봉하고 귀국했다.
중공에 살고있는 한국인이 한국 혹은 일본에 살고있는 육친을 방문, 상봉한 예는 적지 않으나 한국 혹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적의 동포가 공식적으로 중공을 방문, 육친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나리따(성전)공항을 떠나 북경에 도착, 기차를 타고 하르빈을 거쳐 이틀만에 목적지에 도착, 56년만에 극적 상봉을 한 김재봉씨 형제는 『눈물을 흘리며 만 하루동안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와 동행했던 김씨의 아들 만룡씨는 형제가 만나던 순간을 말했다.
일본에 살던 동생 김재봉씨가 형의 소식을 처음들은 것은 37년이 지난 82년5윌 고향을 방문했을 때였다. 사실은 그 반년 전 한국방송공사 (KBS)가 한국인이 많이 살고있는 중공동북지방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형 중재씨가 듣고 KBS에 편지를 띄워 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을 통해 이 소식을 들은 동생 재봉씨는 KBS에 달려가 형의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당장 중공까지 간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재봉씨가 중공방문을 결심한 것은 83년6월, 아들 만룡씨를 시켜 주일 중공대사관을 찾아가 비자신청을 해보았다.
당시만 해도 아직 조자양 중공수상의 한국인 왕래 허용발언이 있기 전이라 김씨부자는 한국적인 자신들에게 비자가 나올 것인가 반신반의하면서 기다리다 5개월 만인 11월·중공대사관에서 비자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중공 땅에서 5년만에 만난 형 중재씨는 이미 80고령으로 가끔 밭이나 돌볼 정도였다.
그러나 부인과 회사의 위생원으로 일하는 아들, 병원의사로 일하는 딸, 그리고 손자3명과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씨 부자가 온다는 사실을 동네사람들이 모두 알고 환영잔치까지 해주었으며 매일 밤 가족은 물론 동네사람들까지 모여 얘기에 꽃을 피웠다.
여화공사는 2백80가구의 한국인만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벽돌담을 한 기와집에 살 정도로 넉넉한 생활을 했다.
이곳에서는 모두 우리말을 썼으며 중국말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방송은 대부분 한국방송을 듣고 있다고 했다. 이북방송은 재미가 없어 안 듣는다는 얘기였다.
김씨 부자에게 한국에 가봤느냐 묻고 고속도로에 차가 줄을 이어 달린다는데 정말이냐고 묻기도 했다.
이북의 생활형편이 어렵다는 얘기들도 했다. 이북의 친척들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으며 김씨 부자가 갔을 때도 마을의 어느 집에는 이북에서 온 친척이 3개월째 묵고있는 중이였다.
그런데 이북에서 오는 친척들은 의복이나 머플러 등 입을 것 먹을 것 등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많아 처음에는 반갑게 상봉하고 헤어질 때는 싸우고 돌아서는 일이 잦다며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북한의 생활상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 부자를 대하는 중공관리들이 매우 친절한 것도 인상에 남았다. 김씨는 컬러TV를 선물로 들고 갔는데 북경공항 세관원은 웃기만 할뿐 세금을 매기지 않고 통과시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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