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의 근로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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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가 교통사고에서 세계 제1위를 차지하고 있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부끄러운 기록은 해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만 되고 있다.
최근 서울택시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의 경우 자동차교통사고 건수는 82년에 비해 20.4%, 사망자수는 11.7%, 부상자는 16.4%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20명 가까운 귀중한 인명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든 범연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오늘은 무사하지만 내일은 누가 어떤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동차의 증가에 따라 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이처럼 늘어나는 이유는 물론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여려 측면에서 그 원인이 분석되고 있다. 택시의 사고율이 특히 높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왔다.
일본 동경의 경우 택시 1만대 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1.7명인데 비해 서울은 무려 76명에 이른다.
우리 나라 택시운전사들의 자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 않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들이 예사로 법규를 위반하고 난폭·과속운전을 하는 중요한 원인이 그들의 근로조건이 나쁜데 있다는 점 또한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요금인상 때마다 인상분은 대부분 업자 몫이 되고 자기 수중에 떨어진 것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운전사들의 주장이다.
법인택시의 이른바 「사납금」 시비가 택시업계의 오랜 고질이었지만 아직 이렇다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구에서 일어난 택시운전사들의 시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을 정색을 하고 해결하려 들지 않고 호도하려다 벌어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내 교통을 13시간이나 마비시킨 것은 결코 잘한 일은 아니지만 운전사들의 그런 집단행동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행정당국이나 업자들의 안이하고 무신경한 자세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납금을 둘러싼 택시업계의 노사분규에서 어느 쪽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제 시민 누구나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이 된 택시승객의 입장에서 볼 때 업자와 운전사의 시비가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택시운전사의 근로조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것이 우리자신의 생명 및 재산보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동경에서 택시요금의 시간·거리 병산제가 실시되면서 교통사고율이 절반 가량 떨어지고 다시 운전사에 대한 고정월급제가 실시되면서 사고가 훨씬 줄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사실이다.
택시운전사를 포함해서 모든 직업운전사들이 느긋하게 핸들을 잡을 조건을 마련해주려면 결국 시민의 부담이 늘어야한다. 부담이 느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택시요금의 병산제 실시 등으로 생길 추가부담으로 교통사고가 훨씬 줄어든다면 그 부담은 부담으로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니다.
교통사고를 줄이는 방법의 하나는 모든 법규위반자를 철저히 가려 엄히 다스리는 것이겠지만 그에 앞서 운전사들이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않아도 될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운전사들의 근로조건 개선은 기실 우리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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